<기자칼럼>고려인 州지사 취소 遺憾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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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최근 크렘린은 러시아 한인(고려인)사회를 우울하게 만드는 결정을 내렸다.
국가두마(하원)의 유일한 고려인 출신 의원인 정홍식(러시아명유리 텐)씨가 사할린주지사로 사실상 내정됐다가 분명치 않은 이유로 취소됐기 때문이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크렘린 대통령실의 지방문제부는 최근 금년말까지 치러야 할 주지사 선거를 앞두고 각주 지사들의 인기조사를실시했다.
그 결과 사할린주지사인 이고르 파르후트디노프가 바닥권의 인기를 보여 그를 해임한 후 이 지역에서 인기가 높은 고려인 정의원을 새롭게 주지사로 영입,금년말 실시될 선거의 후보로 내세울계획을 입안했다.정의원이 하원 건설위원장으로 실 력을 갖추고 있을 뿐아니라 지난 대선때 이르쿠츠크주에서 보리스 옐친대통령의선거대리인으로 활동하기도 해 임명은 기정사실로 여겨졌다.
이런 상황에서 고려인들과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는 사할린주지사로 고려인이 임명될 것이란 소식을 접한 고려인들이 남다른 감회를 가졌을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고려인들의 마음 한구석엔 기쁨과 함께 혹시나 정의원이소수민족이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에 일이 잘못되지나 않을까 하는두려움도 함께 있었다.
이런 마음을 미리 알고 있기라도 하듯 지난달 22일 정의원과면담한 크렘린 지방문제담당 부장은 정의원이 소수민족이라는 점은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언질을 주었다.
그런데 지난달 31일 크렘린은 모든 결정을 백지화하고 현주지사인 파르후트디노프를 연임시켰다.물론 이유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 물론 옐친대통령이 반대했을 가능성도 있고 또다른 정치적 이유가 개재되어있을 수도 있다.
또 현재 헌법재판소에 계류돼 있는 「주지사 후보는 선거시점까지 1년 이상 거주해야 한다」는 사할린주 선거법등이 문제됐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소식을 접한 고려인 사회에서 이번 결정이 소수민족의 신분 상승을 달가워하지 않는 크렘린의 속내를 드러낸게 아니냐고 본다는 점이다.
물론 크렘린은 이번 사건의 전말은 전혀 다른 것이고 절대로 소수민족 차별이 아니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탈린시절 소수민족 가운데서도 유별나게 차별을 받은뒤명예회복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고려인의 입장에선 고려인의상처를 더욱 쓰리게 만드는 행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을 크렘린은 유념했으면 한다.
안성규 모스크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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