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알면 한국도 좋아하게 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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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균관대 사범대 이명학(53·사진) 학장은 지난 17일 중국 50여 개 대학의 교수 73명과 학생 115명에게 e-메일을 보냈다. 이들은 지난 2년 동안 성균관대가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개최한 ‘한글 백일장’에 참가했던 교수와 학생 대표들이다.

“인터넷에 근거 없는 유언비어가 나돌면서 한·중 양국 국민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친숙하고 한국어도 능통한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양국의 오해와 마찰을 해소하기 위해 ‘인터넷 파수꾼’이 되어 주십시오.”

곧바로 답장이 쏟아졌다. “교육자와 어른으로서 중국 젊은이들에게 주신 애정 어린 충고에 감사드리며 학생들에게 편지 내용을 전달하겠습니다. 저희도 중국에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중국 대외경제 무역대학교 한국어학부장 쩌우위푸어 교수)

“양국의 미래와 더 친한 관계를 위한 좋은 글입니다. 고맙습니다.” (제남대학교 한국어학과장 찐파오캉 교수)

이 학장은 중국의 혐한(嫌韓) 분위기를 고민하다 ‘한글 백일장’을 통해 구축된 중국 교수와 대학생 네트워크를 가동하게 됐다. 그는 “중국에서 한글을 아는 대학생이 늘어날수록 혐한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성균관대는 10월과 12월에는 몽골과 우즈베키스탄에서도 한글 백일장을 개최한다. 중국뿐 아니라 동북아 국가들에서 한글을 사용하는 대학생들을 격려하고 이들과 한국의 ‘끈’을 이어 가기 위해서다. 장기적으로는 일본까지 포함시켜 성균관대가 ‘한글 백일장의 메카’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이 학장은 “한국을 동경하던 몽골과 베트남·일본·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도 나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통해 각국의 인재를 육성했듯이 한국에 열정을 품은 각국 젊은이들을 지원해 ‘지한파’ ‘친한파’로 키워 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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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점 된 중국 백일장=2007년 6월 성균관대는 중국 베이징에서 첫 한글 백일장을 열었다. 조선족은 배제한 순수한 중국 대학생들이 대상이었다. 출제위원으로 참가했던 성균관대 원만희 교수는 “중국 전역 50개 대학에서 선발된 최정예 학생들이 모이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첫 대회의 성공에 힘입어 올 4월엔 상하이에서 2회 대회가 열렸다. 이번에도 대성황이었다. 동북단 헤이룽장성에서 36시간여 동안 기차를 타고 오는 등 중국 전역에서 한글을 아는 대학생 실력자들이 몰려 왔다. 행사 과정에서 한국어과가 개설된 중국 대학이 총 70여 곳이고 전공자는 2년제 대학을 포함해 1만5000여 명이라는 사실도 확인됐다.

2007년 대회에서 입상한 중국 대학생 2명은 졸업과 함께 장학금을 받고 성균관대 대학원으로 유학와 재학 중이다. 성균관대는 또 한글 백일장에 참가했거나 참가 의향이 있는 중국 대학생들을 위해 홈페이지를 제작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온라인 한글 교재 및 한국의 문화·역사를 소개하는 코너 등을 제공할 예정이다. 한글에 관심 있는 중국 대학생들과 중국어에 관심 있는 한국 대학생들을 엮어 주는 ‘자매 결연’ 서비스도 도입할 계획이다.

◆다음달 몽골서 첫 한글 백일장=성균관대의 한글 백일장은 아시아 전역으로 확대된다. 다음달 29일엔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 있는 몽골국립대에서 첫 한글 백일장이 열린다. 현지 25개 대학, 75명의 학생이 참가한다. 몽골에서 한국어 전공 대학생은 3000명쯤 된다. 올 12월엔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에서 대회가 열린다. 여기엔 주변국인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의 한국어 전공 대학생 60명이 참가한다. 서정돈 성균관대 총장은 “중앙아시아에서 한글을 아는 대학생들이 한류의 전도사 역할을 할 수 있게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천인성·김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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