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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종교란 무엇이기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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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 15면

한국은 사람은 많고 땅은 좁아 경쟁이 심한 나라이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그만큼 자연이 좋고 편안해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뜻일 수 있다. 그래선지 한국인의 현실 세계에 대한 집착은 참 유난스럽다.

이나미의 마음 엿보기

피안을 지향하는 기독교나 불교도 한국에 정착하고 나면 잘 먹고 잘살자는 지극히 현실적인 종교로 변하게 된다. 절이나 교회에 가는 다수의 평범한 신도는 깨달음과 절대자에 대한 사랑이라는 추상적 목표보다 자신과 가족의 부귀공명을 얻기 위해 기도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속담은 종교에 상관없이 한국인의 마음을 잘 대변해 주는 것 같다.

이런 현상은 한국인의 심성 저류에 흐르는 샤머니즘적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한국의 샤머니즘은 자연과 인간 세계의 일치, 이승과 저승 세계의 동등한 연속성, 개인의 삶과 집단의 삶의 동일체적 유대감 등을 특징으로 한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는 기독교적 세계관이나, 세속의 삶은 불성(佛性)을 회복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불교적 종교관, 귀신을 배제하고 합리적인 태도로 죽음을 바라보는 전통적 유교관이나, 집단에서 벗어나 개인의 성스러움을 지향하는 정통 도교나 힌두교도와 많이 다르다.

외국의 불자나 선교사에게 수동적으로 선교를 당한 것이 아니라 이차돈의 순교나 근대 천주교도에 대한 박해와 같은 어려운 고비들을 극복하면서 능동적으로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인 것도 특이한 현상이다. 하지만 한국인의 전통적인 샤머니즘적 세계관은 불교·유교·도교·기독교 등의 외래 종교들을 수용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한국적으로 변형시키기도 했다.

심지어 마르크시즘조차 김일성이라는 큰 ‘무당’을 숭배하는 샤머니즘적 종교로 변질시킬 정도이니까. 이렇게 다른 종교의 교리들을 절충시키는 ‘습합(習合·syncretism)’ 현상은 교조적으로 종교를 믿는 이들 눈에는 미신이나 왜곡으로 비칠 수도 있다. 마치 타락한 선무당들의 굿을 연상시키는 일부 이단적이고 괴상한 안수기도나 부흥회·천도제 등이 있는가 하면, 종교란 이름으로 타인을 비방하거나 해코지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종교인은 종교인이 아니라 사기꾼이나 선동가일 뿐이다.

종교성(religiosity)은 크게 종교적 태도와 종교적 활동의 영역으로 나눠 생각해 볼 수 있다. 종교적 태도는 세속에서 느끼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피안의 영역으로 지향하는 마음을 말한다. 기독교의 영성훈련이나 기도, 불교의 독경이나 참선은 종교적 태도를 갈고닦는 훌륭한 방식들이다. 종교적 활동은 교회와 절을 열심히 다니거나 종교단체의 이름으로 자선활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너무 세속적 활동에만 에너지를 쓰면 진정한 종교심을 잃어버린 채 종교가 계산적이고 현실적인 도구로 변질될 수 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보이는 종교 간 갈등은 타 종교를 수용하는 한국의 전통이나, 이웃을 사랑하고 자비심을 갖자는 각 종교의 전통에 모두 위배된다. 분석심리학자는 관세음보살·마리아·예수·마호메트·부처 등 종교적 인물상에서 신성성을 지향하는 우리 마음의 공통적인 움직임에 주목해 왔다.

마음을 열면 성경에서 불경이, 불경에서 성경이 읽히고 절에 가건 교회에 가건 탐욕과 비루함에 가득한 인류를 사랑하셨던 부처와 예수의 고결한 가르침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질 것이다. 예수쟁이니, 머리를 민 자들이니 하는 비속한 언사로 타 종교를 헐뜯고 분열을 조장한다면 그야말로 악귀나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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