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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세상보기>이혼,그 영원한 숙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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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아니 네가 슈퍼마켓에는 웬일이냐.』 『우유 좀 사러 나왔습니다.아버지는 웬일이십니까.』 『주스 좀 사러 나왔다.우유 살때는 꼭 유통기한을 확인해라.「예전에」 며늘아기는 날짜가 다된우유를 사들고 들어오면 막 화를 내지 않든.』 『아버지도 청량음료는 작은 병으로 사세요.「예전에」 어머니는 큰 병은 냉장고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야단치셨잖아요.』 이 대목은 부자(父子)도 모녀(母女)못지 않게 장보기를 즐기고 있다는 뉴욕 타임스 보도를 「이혼한 부자」의 경우로 각색한 것이다.이혼한 60대 아버지와 역시 이혼한 30대 아들이 이렇게 만나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이 과연 한국에는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일까.
얼마전 보도에 보면 둘째아들의 사업자금을 대주는 문제를 놓고의견이 엇갈린 60대 부부가 끝내 이혼에 합의했다고 한다.아버지와 장남이 한편이고,어머니와 차남이 한편이 된 이 송사에서 법원은 상호 위자료 없이 재산을 반분하도록 결정 했다.이 가족이 이혼으로 부디 행복을 찾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이런 사유로도 이혼이 가능하다는 그 사유의 다양성에 대해선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윤락주부 2명에게 구류형이 떨어지고,윤락행위를 한 남자8명도 역시 구류형을 받았다.법원은 이들의 죄질이 나빠 벌금형보다 더 고통스런 구류형을 내렸다고 말했다.가족의 이해아래 소리소문없이 한때의 잘못을 수습하기가 더 어려워진 것이 이들에겐진짜 고통이 될 것이다.
14년동안 프랑스 대통령을 지낸 존경받는 사회주의자 미테랑의장례식에 내연의 처와 숨겨진 딸이 나타나 매스컴을 깜짝 놀라게한 일이 있었다.이런 깜짝쇼를 「너그럽게」 연출한 미망인 다니엘 여사는 최근 출판된 자서전에서 미테랑이 젊 은 여자를 유혹하는데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처음에는 화가 났다고 말했다.
미테랑과 레지스탕스 동지이기도 한 다니엘 여사는 그러나 부부가 서로에게 깊이 연결돼 있다면 각각 다른 사람과 사랑하는 것이 결코 납득하지 못할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고차원의 지성(知性)다운 얘기지만 한국의 이혼남.이혼녀로서는 수용 하기 어려운일일 것이다.
한국에서의 이혼 증가는 걷잡을 수 없다.15세이상 인구의 이혼 비율이 85년 0.6%,90년 0.8%이던 것이 95년에는1.1%로 늘어났다.결혼대 이혼 비율인 이혼율은 1.5%를 넘는다.통계청의 국제통계연감에 따르면 이 비율은 미국의 4.6%에는 못미치나 일본(1.4%).싱가포르(1.3%)를 능가했고 독일(1.7%) 수준에 접근하고 있다.
우리는 도대체 이혼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결혼은 영원한 결속이며 서약(誓約)입니다.그 결속은 사회 앞에서 한 약속이며,서약은 하늘 앞에서 한 맹세입니다.그것을 어기면 안되지요.동양에서도 부부는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저 몽테스키외는 말합니다.부부 사이는 너무 오래 함께 있으면 차가워집니다.결혼은 민사계약입니다.쌍방이 결혼을 불편하게 생각하면 그 계약을 끝낼 수도 있지요.』 지금은계몽철학자들의 견해가 존중되고 있는 시점이다.그렇다면 이혼을 「특별한」 일로 봄으로써 쉽게 이혼하려는 풍토에 제동을 걸려는노력은 마냥 헛된 일이기만 할까.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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