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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代 이 사람을 주목하라] 8. 한나라당 고진화 당선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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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나라당 고진화(서울 영등포갑)당선자는 '386'세대다. 성균관대 총학생회장.삼민투위원장을 지낸 운동권 출신이다. 대학 4학년 때인 1985년 '미 문화원 점거 사건'을 배후에서 기획했다. 지난 총선에서 맞붙었던 민주당 김민석 후보는 그때 '공범'이었다. 당시 함께 지명수배돼 도망자 생활을 같이했다.

高당선자는 85년 9월 당시 제1 야당인 신민당 이민우 총재를 찾아갔다. 정치권과 학생들이 연대해 개헌(대통령 직선제)투쟁을 할 것을 제안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곧바로 경찰에 연행돼 구속됐다. 꼬박 2년6개월 동안 감방생활을 했다.

88년 노태우 대통령 취임 특사로 풀려난 뒤 그는 양金(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씨의 단일화 실패로 사분오열돼 있던 재야 시민운동 세력들을 한데 끌어 모으는 일에 참여한다.

열린우리당 김근태.이부영 의원 등이 주축이 된 '전민련'(89년), '새정치와 개혁을 위한 민주연합'(91년), '민주개혁정치모임'(92~94년) 등으로 이어지는 통합운동에 가세한 것이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2004년. 재야 민주화세력은 권력의 중심세력이 됐다. 高당선자도 두번의 도전 끝에 금배지를 달게 됐다. 그러나 그가 서 있는 곳은 과거 '동지'들의 태반이 몸담고 있는 곳이 아니다.

그는 4년 전 김영선.남경필 의원 등과 소장파 모임인 '미래연대'를 만들면서 아예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그에게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리라는 틀 속에서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의 이념적 차별성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민주화운동 세력이 정치적 약자가 아니라 권력의 중심세력으로 부상했기 때문에 '절차적 민주주의'는 달성됐다"고 했다. "이제 누가 좋은 대안을 만들어내느냐 하는 '내용적 민주주의'를 놓고 경쟁하는 단계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해답의 열쇠를 한나라당에서 찾고 있다고 했다. "한나라당이 변할 가능성이 큰 데다 단순한 민주화운동 세력의 재결집만으론 선진국가 진입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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