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리포트>어둠속의 밝음 애틀랜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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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의식(儀式)은 개인의 마음을 자발적으로 그 의식을 치르는 공동체 안으로 걸어 들어가게하는 마술(魔術)인가 보다.공자(孔子)가 예(禮=의식)를 그다지도 강조한 이유는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올림픽은 의식이다.4년만에 한번씩 젊은이의 몸힘 겨룸을 통해 세계를 단일공동체로 만들어 보자는 「평천하(平天下)」사상이 그 대강(大綱)이다.몸힘의 겨룸처럼 순수한 열광이 달리 또있을까.관중의 한사람으로 참가해 보니 특히 개회식이야말로 선수들 입장을 전후해 음악과 춤과 제사 가 정연하게 시간표에 따라진행되는 종합 의식임을 알겠다.
올림픽대회를 애틀랜타에 유치했다는 것은 극단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사람의 눈엔 미국인들 특유의 「무리(無理)」가 분명하다.
이곳의 요즘 낮 기온은 하늘이 개면 그야말로 불볕이다.그런가 싶다가 어느 새 번개가 치고 광풍이 불며 폭우가 쏟아진다.이번애틀랜타 올림픽의 개회식은 밤에 봉행(奉行)했다.애틀랜타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개회식을 굳이 밤으로 정한 것은 이곳 낮의 불볕 더위를 피하려는 궁색한 궁리도 들어 있었음이 분명하다.그런데 이번 개회식에서 증명된 것은 밤 은 사람 마음속의 공동체적열정을 낮보다 훨씬 잘 태운다는 점이었다.운동장에 10만명(관중 8만5천,선수 1만1천,그밖에 진행요원등)이 모여 춤추고 노래하고 소리를 지르는 가운데 어떤 공동체적 영감 같은 것이 뿜어져 나와 한 아련한 목표 같은 것이 형성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스타디움의 관중,요술의 일부가 돼 전율」이라고 이 지방신문인 애틀랜타저널은 올림픽 개회식 페이지 머리기사 제목을 뽑았다. 궁즉통(窮卽通)은 궁하면 통한다로 풀 것이 아니라 궁해야 통한다라고 풀어야 옳을 때가 많다.애틀랜타가 무리를 한 결함은 날씨만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운동장.숙박시설.교통, 이 모든 면에서 「깊은 남부(南部:deep south)」의 후진성에 둘러싸인 이 작은 도시로서는 올림픽을 개최하는 것이 힘에 겹다.어쩌면 이들은 88년 서울올림픽에서 서울 사람의 것보다 더 큰 「간뎅이」를 차용해 왔는지 모른다.이리 저리 메우고 때우고 얽은 올림픽 준비가 매우 허술해 보인 다.이들이 믿는 것은 일을 저질러 놓으면 꼭 해내고 만다고 스스로 믿는 억척같은미국인의 능력일 것이다.
개회식 프로그램은 과거의 좌절을 털어버리고,현재의 갈등을 풀고,반드시 미래에 대한 꿈을 이루겠다는 소원으로 빼곡이 차 있었다.이 소원을 그들은 이번 올림픽 게임에 대입한 것이다.과거의 좌절이란 남북전쟁의 패배와 남부의 후진성이다.
현재의 갈등이란 남부,특히 애틀랜타가 초점이 돼 있는 흑백간인종 갈등이다.
존 윌리엄스가 작곡해 애틀랜타 심포니오케스트라를 직접 지휘 연주한 「영웅들을 불러 오라」는 온 스타디움 안을 종교적 엄숙함과 고뇌로 이끌었다.그 다음에는 쓸쓸하면서도 감미로운 남부의재즈 음악들 연주에 맞춘 집체 율동이 공연됐다.
중간 절정은 고(故) 마틴 루터 킹 2세 목사의 그 처절하면서도 무저항의 순교자다운 1963년의 연설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가 이 민권운동 지도자의 흑백 사진 화면과 함께 그의 육성 녹음으로 장내에 퍼져 나온 것이었다.올해가 근대 올림픽 1백주년 대회라면 1963년은 흑인 노예해방선언문 서명(署名)1백주년이 된 해였다.
그러나 절정은 올림픽 성화가 마지막 점화자(點火者)에게 전달되려는 순간 그것을 받는 사람이 무하마드 알리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가 거의 반신을 못 움직여 점화작업에 상당히 애를 먹고있는 장면을 보았을 때 일어났다.어렵사리 성화는 날아 올라가 화구에 점화됐다.알리는 아마추어로서 올림픽 권투 라이트 헤비급금메달을 땄다.
이날밤 흑인 영웅 무하마드 알리의 반신을 못쓰게 된 가엾은 모습이 거기에 나타나게 된 구도(構圖)를 나는 모른다.그러나 그것은 두고두고 내게 우울한 의미를 남기게 될 것같다.어둠의 밝음이 갑자기 다시 어둠이 돼 내 가슴을 충격하였 던 것이다.
강위석 본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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