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공룡의 살아남기 IBM 대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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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컴퓨터 초보자들은 컴퓨터 운영체제(OS)의 기능을 익히는데 가장 애를 먹는다.컴퓨터가 일을 하도록 명령하는 OS 기능을 잘 다루려면 그만큼 시간과 노력이 들기 때문이다.이런점에서 미IBM이 9월 출시 예정인 음성인식 32비트 O S 「멀린」은「컴맹(盲)」「네트맹」은 물론 장애인들에게도 희소식이 되고 있다. 하지만 최초의 음성인식 OS를 개발한 IBM은 예상외로 조용하다.지난해 OS/2워프를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윈도95보다 수개월 앞서 발표할 때와 마찬가지다.만일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운영체제에 이 기능을 실었다면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 을 것이다.지나칠 정도로 신중한 공룡 IBM의 자세지만 음성인식 OS시대를 몰고올 멀린 속에는 재기의 칼날이 숨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70년대 세계 컴퓨터업계를 주름잡던 IBM은 80년대 들어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의 「윈텔」진영에 밀리는 수모를 겪었다. 그동안 메인프레임등 중.대형시스템 위주의 정책으로 공룡처럼 몸집만 커졌지 PC이용자들을 위한 날렵한 대응에는 실패,몸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지난 91년부터 93년까지 3년간 1백60억달러의 누적적자를 기록한 방만한 경영의 결과였다 .
이런 IBM이 93년 루이스 거스너(54)회장 취임이래 리스트럭처링과 네트워크 컴퓨팅 전략으로 지난해부터 힘을 되찾기 시작했다.비록 지난해 컴퓨터 운영체제 싸움에서 OS/2워프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95에 참패당했지만 과감한 경영 합리화로 허리끈을 졸라매더니 지난해에는 창사이래 최대인 매출7백20억달러와 63억달러의 순익을 각각 기록했다.대형시스템 시장이 80%이상 성장하고 소프트웨어부문도 같은 호조를 보인 덕이지만 정보통신분야로 사업 초점을 바꾼 네트워크 컴퓨팅 전략이 궤도에 오르고 있다는 점에 IBM은 무게를 두고 있다.
한때 「화석 공룡」으로까지 불리던 IBM이 흑자전환과 멀린 개발만으로 「주라기공원에서 부활했다」는 평가를 받기에는 아직 이르다.그러나 패배에 개의치 않고 멀린으로 마이크로소프트에 다시 도전장을 내며 네트워크부문 사업 강화로 옛 영 화를 되찾으려는 IBM의 노력은 기업의 변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주고 있다.
(호놀룰루에서) 양영유 정보통신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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