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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논조>국제협조 해칠 미국 對쿠바제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쿠바에 대한 제재강화법(헬름스-버튼법)을 예정대로 발효시키되,이 법의 초점이 되고 있는 외국 기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조항과 관련한 실제 배상청구소송은 내년 2월까지 중지키로 결정했다.이번 결정은 내정( 內政)상의 의도와 외교적 고려의 틈바구니에 끼인 클린턴 정권의 고육지계(苦肉之計)라 할 수 있다.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내의 뿌리깊은 반(反)쿠바 감정을 다독거리는 형태로 제재를 강화하는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었던 반면 자국 기업에 대한 악영향을 우려하는 유럽연합(EU)회원국과 캐나다와의 마찰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외국 기업에 대한 일방적인 제재 조치를 포함한 미국의 대(對)쿠바 제재강화에 대해 캐나다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분쟁처리위원회와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움직임을 보여 왔다. EU는 WTO에 대한 제소는 물론 EU 회원국을 방문하는미국 상사원들에 대한 상용(商用)비자의 발급을 제한하는등의 대항조치까지 검토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쿠바 문제」는 미.유럽 동맹에 심각한 균열을 가져올지도 모르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던 셈이다.
실질적으로 제재 법안의 발효가 6개월 가량 연기됐다고는 하지만 쿠바 제재를 둘러싼 미국과 동맹국간의 대립이 표면화된 것은현재 미국 정치의 국제 관계에 대한 무신경을 다시 한번 드러낸것이다. 클린턴 정권이든 의회의 다수파를 차지하고 있는 공화당이든 어떤 문제를 다룰 때면 서로 「국내 여론의 상식」을 기준으로 삼는 비슷한 방향에서 그저 목소리를 더 강하게 내느냐 마느냐를 문제삼는 논쟁으로 일관,대외 관계에 대한 신중한 배려는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던게 사실이다.마치 선거 캠페인의 일환처럼정책을 결정한뒤 동맹국과의 주도면밀한 사전 조정 없이 정책을 얼렁뚱땅 발표함으로써 거듭 우방의 반발을 초래해왔다.
자크 상테르 EU 집행위원회 위원장은 지난주 동맹국에도 영향을 미치는 미국의 일방적인 쿠바 제재 조치는 쿠바의 민주화 추진에도,미국의 이익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클린턴 대통령에게 경고한 바 있다.
클린턴 대통령이 쿠바 제재 강화 문제와 관련해 타협안을 발표했던 지난 16일 미 상원은 이란과 리비아에 투자하고 있는 외국 기업을 제재하는 법안을 가결시켰다.이에 대한 EU와 일본의우려는 실로 크다.
독선적인 통상 정책으로 기울지 않고 국제적인 협조를 중시하는태도를 취해줄 것을 미국에게 거듭 요청한다.
[정리=이철호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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