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에 웬 당구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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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현대백화점 서울 신촌점의 남성복 매장들이 미니 당구대 같은 놀이시설을 설치해 고객을 끌고 있다.

“손님, 맞는 옷을 찾아올 동안 잠시 당구라도 치고 계시겠어요?”

16일 오후 서울 창천동 현대백화점 신촌점의 한 남성복 매장. 점원이 남자 손님에게 매장 한쪽에 놓인 미니 당구대를 가리킨다. 이 백화점 남성복 코너를 좀 더 돌아보면 당구대 말고도 미니 와인바, 인형 뽑기 기계, 테이블 축구 기계 등 다양한 놀거리가 마련돼 있다. 신촌점은 지난달 남성복 코너를 뜯어고치며 이런 이색 실험을 했다. 김종의 의류패션팀장은 “남성복 매장은 여성복에 비해 인테리어나 서비스에서 차별점이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요즘 젊은 남성들도 특이한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백화점이 남성을 끌기 위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2000년대 초반엔 백화점 구석에 남성용 휴게실을 마련해 주는 것 정도가 뉴스가 됐다. 하지만 지금은 매장 설계를 할 때 남성 고객을 염두에 두는 일이 보편화됐다. 남성들이 외모에 부쩍 투자하면서 의류와 소품·화장품의 주요 고객으로 떠오른 것이다. 남성을 동반한 가족 쇼핑객이 백화점에 더 자주 오고 오래 머문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우선 남성용 휴게실이 백화점 한 귀퉁이에서 한복판으로 나온 것이 눈에 띈다. 지난해 말 문을 연 롯데백화점의 부산 센텀시티점은 2층 명품매장 한가운데에 칵테일바를 만들었다. 이곳의 한길모 명품잡화팀장은 “명품 매장을 찾는 남성이 늘어나 이들의 취향에 맞는 공간을 만들었다. 주부들은 남편이 칵테일바에서 쉬는 동안 느긋하게 매장을 둘러볼 수 있어 좋아한다”고 전했다.

현대백화점 서울 압구정 본점도 올 4월 남성매장을 리모델링하면서 매장 입구에 요트 모양의 휴식 공간을 만들었다. 남성 고객들이 키높이의자에 둘러앉아 음료수를 마시며 라이터·회중시계·목걸이 등 소품을 구경할 수 있게 했다.

인터넷용 PC도 설치했다. 이 백화점의 이윤규 남성의류팀장은 “필요한 것만 사고 빨리 빠져나가는 게 남성들의 옛 쇼핑 습관이었다면, 요즘은 매장을 둘러보면서 여유 있게 물건을 사려는 이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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