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과학기술특별법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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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2월 과학기술자문회의 보고석상에서 대통령이 특별지시해 추진돼 오던 「과학기술혁신을 위한 특별법(안)」이 드디어 입법예고되었다.그동안 과학기술 창달에 대한 문민정부의 장기적이고 혁신적인 정책을 고대해오던 과학기술계는 이 특별법 제정에 많은기대를 하고 있었고,주무부처인 과학기술처도 처음에는 매우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여러 공청회와 부처간 협의를 거쳐 나온 이번 특별법안에 대해 과학기술계 인사들의 일반적인 반응은 「실망스럽다」는 것이다 .「혹시나」하던 기대가 「역시나」하는 현실인식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세계적인 개방경제 체제로 돌입하고 지적소유권 보호가 강화돼 가는 현 시점에서 우리의 독자적인 과학기술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는 명제엔 이론의 여지가 없다.이미 우리나라는 저임금 국가도아니고 산업구조 또한 와이셔츠 팔던 시대로부터 반도체 칩이 무역수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고부가가치 산업시대로 발전되었다.그러나 우리의 자랑인 반도체 산업에서조차 외국에 지불하는 특허권 사용료가 전체 매출액의 10%에 가깝고 기술무역에서는 수입액이 수출액의 20배가 넘는등 내 용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산업기술의 실상은 아직도 부실하다.더구나 21세기의 정보화사회.
지식산업사회를 끌어갈 창조적인 과학기술인력 양성은 경직된 교육제도와 대학의 기초연구기반 부실로 인해 선진국에 비해 점점 뒤떨어져가고 있다.
이러한 위기감 속에서 과학기술 혁신을 위한 특별법 제정은 시의적절한 것이었다.「기술패권주의」라고까지 불리는 국가간 기술전쟁으로 앞으로 기술의 부익부 빈익빈현상의 심화가 예상되는 가운데,우리의 과학기술을 하루빨리 선진국 수준으로 높 여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기 때문이다.또한 과거 정부 주도로 이루어지던 과학기술 개발 체제의 불필요한 간섭과 규제를 혁신해 규모가 커진민간기업의 연구개발활동과 조화를 이루며 새로운 세계무역기구(WTO)체제하에서 연구개발투자의 효율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새 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가장 핵심적인 정책으로 전문가들은 두가지를 지적해왔다.첫째는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하는 것이고,둘째는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도록 체제를 정비하는 것이다.연구개발 역사가 일천(日淺)해 축적된 연구개발자산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아직도 투자확대가 급선무며,특히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정부의 연구개발투자를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우리의 연구개발 정부예산은 총예산의 1.96%(94년)로,일본(3.23%)이나 미국(4.5%).프랑스(5.6%)등에 비해 많이 뒤떨어져 있다.대만이 헌법에 「중앙정부는 예산총액의 15%이상을 교육.과학및 문화의 경비로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과학기술 특별법이 5년기한의 한시적 특별법인 만큼 프랑스의 「슈벤느망 법」과 같이 구체적인 정부투자의 확대 목표가 명시되기를 기대했으나 그 기대는 무산됐다.투자의 효율성 제고에 있어서도 과학기술 예산의 구체적 집행계획 심의를 재정경제원의 예산실보다 전문가 집단에 맡기자는 취지의 「과학기술예산 선심제」도유보됐다 .
우리에게 선언적인 의미의 과학기술 특별법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이미「과학기술이 중요하므로 정부는 과학기술의 진흥을 위하여노력해야 한다」는 식의 문구를 담은 법은 많이 있다.그보다는 정부의 참다운 과학기술 혁신의지가 담겨서 실질적 인 변화를 줄수 있는 법이 필요한 것이다.그러나 이 법안은 잉태단계부터 이러한 기대를 만족시키기 어려운 상황에서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무릇 한 나라의 과학기술을 혁신하는 데에는 통치권자의 의지가중요하다.과학기술의 혁신이 많은 유권자의 피부에 직접 와닿는 사항도 아니며,그 효과가 임기중에 즉각 나타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그래서 외국의 경우에도 국가미래에 대한 장기비전을 가지고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했던 케네디나 드골 대통령 시절에야 미국과 프랑스의 과학기술이 도약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일관된정책 의지없이 단순한 지시에 의해 나온 법안치고는 그래도 수준급이라고 자위나 할까.
◇필자약력:▷43세▷서울대 물리학과▷미국 스탠퍼드대 이학박사▷미국 제록스 팔로 알토연구소 연구위원▷서울대 물리학과 교수(현)▷과학기술우수논문상 수상 吳世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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