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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레이저 헤드""스탕달 신드롬" 공포물 13일개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색깔이 다른 납량영화 『이레이저 헤드』와 『스탕달 신드롬』이13일 나란히 개봉된다.두 작품은 이야기보다 기괴한 화면과 음향으로 보는 이를 흡인한다는 점에서 공통점.
『이레이저 헤드』는 데이비드 린치 감독이 발이 기형인 딸 제니퍼를 낳은 뒤 인간의 실존적 조건에 대한 공포를 충격적인 영상과 음향으로 잘 묘사한 작품이다.줄거리도 자전적인 체험을 기초로 한다.주인공 헨리는 애인이 외계인처럼 흉측한 아기를 낳고는 도망가버리자 충격과 공포로 머리털이 얼굴 길이만큼 곤두선다.번데기를 연상시키는 아기를 보면서 헨리는 극도의 혐오감에 빠진다.자신의 머리가 잘려나가 지우개 원료로 쓰이는 악몽을 꾸는가 하면 자신이 기형아로 변하는 환상 에 휩싸이기도 한다.마침내 가위로 아기의 배를 가르는 헨리.그러자 배설물과 오장육부.
정충등 온갖 더러운 것들이 아이의 단말마와 함께 세상으로 튀어나온다.영화의 마지막.아름다운 요정이 다가와『천국에선 모든 것이 가능해요』라며 그를 껴 안아주지만 그녀의 뺨에는 흉측한 혹이 두개 달려있다.
꿈과 현실이 뒤섞인 암시적인 화면들로 가득하기 때문에 스토리를 이해하려 하지 말고 자유롭게 이미지를 느끼며 봐야한다.린치감독은 산업사회가 가하는 억압과 불안의 피해자이면서도 이를 모르거나 무시하고 사는 미국 중산층의 허위의식을 기괴한 영상으로폭로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보여온 사람.『이레이저 헤드』는 그의감독데뷔작으로 『블루 벨벳』『광란의 사랑』등 국내개봉됐던 후기작에 비해 더욱 파격적이고 독창적인 연출세계를 보여준다.감춰진인간의 광기를 일거에 폭발시키 듯 불꽃과 굉음이 관객을 내내 긴장시키고,명암대비가 세련된 흑백촬영은 초현실주의 목판화같은 분위기를 내면서 공포감을 가중시킨다.이처럼 탁월한 기법 때문에난해한 서사구조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1시간30분동안 화면에서 눈을 떼기 힘들다 .
미국에서는 한밤중에 보면 더욱 분위기가 있는 「심야컬트영화」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국내에서도 지난달 29일 밤12시 서울 동숭시네마텍에서 심야시사회가 열렸는데 고교생과 대학생 1천여명이 몰려 극장측은 예정에 없던 재상영을 할만큼 성황을 이뤄국내 심야영화컬트팬의 존재를 확인시켰다.
『이레이저 헤드』와 달리 『스탕달 신드롬』의 스토리는 이해하기 쉽다.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엽기적 강간범을 쫓던 강력반 여형사 「안나」는 어느날 우연히 미술관에서 『이카루스의 비행』이란그림을 본뒤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안나를 노리던 강간범 알프레도는 안나의 신경이 불안해진 틈을 타 그녀를 성폭행한다.그후로그녀는 점점 난폭한 남자로 변해간다.알프레도와 애인,그녀를 치료하던 정신과의사를 차례로 살해한뒤 경찰에 체포된 안나는 『내속의 알프레도를 나도 어찌할 수 없다』며 울부짖는다.예술작품을감상한뒤 충격으로 정신질환을 앓는 현상인 「스탕달 신드롬」을 소재로 70년대 공포물 『서스페리아』의 다리오 알젠토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인간의 미의식을 고양하기 위한 예술이 실은 인간정신의 불균형을 초래하는 광약(狂藥)이 될 수도 있다는 발상에서 제작됐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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