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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마을 아이들 “도노반, this this?”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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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바닷가 마을에 방과후 영어교사로 부임한 루미스 선생님(中)이 10일 오후 충남 서천 송석초교 4학년 학생들과 함께 갯벌에서 야외수업을 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도노반, 디스, 디스(Donovan, this, this. : 도노반, 이거요, 이거.).”

“댓츠 어 허밋 크랩(That’s a hermit crab.: 그건 소라게야.).”

10일 오후 충남 서천군 송석리 바닷가. 물이 빠진 드넓은 갯벌에서 송석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 14명이 재잘거리며 미국인 도노반 루미스(24) 선생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아이들 손에는 게·소라·조개 등이 들려 있었다. 루미스는 허리를 숙여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췄다. 그리고 하나하나 영어로 설명해 줬다.

전교생 54명, 시골 갯마을의 송석초등학교에는 1일 귀한 손님이 왔다. ‘TaLK’(Teach and Learn in Korea) 프로그램을 통해 방과 후 학교 영어교사로 루미스가 부임한 것이다. TaLK프로그램은 교육과학기술부가 교포나 외국인학생 등 380명을 농어촌지역 영어 강사로 초빙해 한국체험과 영어 강사를 함께할 수 있게 하는 장학제도다.

루미스 선생님이 어린이들과 놀이 기구를 이용해 수업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그가 오면서 영어학원에 다녀본 적이 없는 갯마을 아이들은 3개 반으로 나눠 월~금요일 매일 1시간씩 그와 수업하고 생활하며 살아있는 말하기 영어를 체득하고 있다. 갯벌 야외수업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가는 길. 운동장에서 루미스와 마주친 아이들은 손을 흔들며 그가 가르쳐준 “티처 도노반, 도노반 티처” 노래를 불렀다. 부임한 지 열흘 남짓, 그에게는 벌써 별명이 붙었다. 이름이 비슷하다며 ‘도마뱀’, 얼굴이 잘생겼다며 ‘조각미남’이다. 그는 별명 이야기를 듣자 “아이들과 친해지는 것은 좋지만 나는 엄연한 선생님”이라며 짐짓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전날 5~6학년 수업은 학교운동장에서 이뤄졌다. 아이들은 주변에 심어진 각종 꽃의 색깔과 이름을 영어로 어떻게 표현하는지 배웠다. 야외수업이지만 루미스는 휴대용 터치스크린 칠판을 들고 다니며 단어를 적어 아이들에게 보여줬다.

이날 갯벌 야외수업 전에는 유치원~2학년 아이들의 실내 수업이 있었다. 수업은 놀이였다. 아이들은 ABC노래를 부르며 그와 함께 춤을 췄다. 두 팀으로 나눠 게임을 했다. 여러 가지 장난감과 뽕 망치도 등장했다. 내내 웃음과 함성이 끊이지 않았다. 그는 주말을 반납하고, 수시로 밤까지 새우며 교재를 만드는 등 수업 준비를 열정적으로 해왔다. 그는 “영어는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습관”이라며 “아이들이 영어를 배우기에는 놀이방식이 가장 좋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루미스의 수업을 듣고 있는 박유림(4학년)양은 “영어를 배우는 게 아주 신나서 수업이 항상 기다려진다”라며 “얼른 많이 배워 선생님처럼 영어를 잘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인근 칼폴리 세인트루이스 캠퍼스의 졸업반인 그는 “많은 경험을 하고 한국을 배우고 싶었다”라고 TaLK프로그램에 지원한 이유를 밝혔다.

루미스는 진짜 한국을 느끼고 싶다며 원룸보다 교사의 가정집에 머무르는 홈스테이를 선택했다. 그는 “곧 있을 한국의 추수감사절(Korean Thanksgiving Day·추석)이 어떤지 경험해 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서천=민동기 기자 ,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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