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순범의 행복 산부인과] 몸무게 70kg, 자궁혹 무게 40kg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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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무게만 130㎏인 인도의 한 여성. 70㎏의 배 무게를 겨우 버티며 사는 한 할머니, 자기 몸무게인 70㎏의 절반 이상인 40㎏의 배 무게 때문에 먹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다가 2년 만에 병원으로 실려온 한 16세 소녀….

쌍둥이라도 임신해서였을까? 아니면 고도비만 환자들? 아니다. 이들은 다름 아닌 자궁 속에 혹을 키운 여자들이다. 요즘같이 조기 진단 시대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왜 저렇게 될 때까지 자신을 방치한 걸까? 가장 큰 원인은 무지일 것이다. 배가 점점 커지는 딸을 귀신이 들렸다고 움집에 2년 동안 가둬둔 부모나 살이 너무 찌는 것 같았다고만 말하는 할머니는 자궁 속에도 혹이 생긴다는 사실에 대해선 알지 못했던 것이다.

또 다른 원인은 자궁 속에 생기는 혹의 특성 때문이다. 흔히들 ‘혹=암’이라고 생각하지만 자궁과 난소에는 악성이 아닌 혹이 많이 생긴다. 또 주변 장기에 해를 미치거나 전이되지 않으며 생명에도 지장이 없다. 100㎏ 가까이 혹이 자라는데도 이를 방치할 수 있었던 원인이다.

이런 특성을 가진 혹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궁근종’과 ‘난소낭종’ 이다.

우선 자궁근종을 살펴보자. 자궁은 호르몬의 지령에 따라 엄격하고 정확하게 통제를 받으며 한 달을 주기로 세포의 성장·성숙·죽음이라는 극적인 변화를 반복적으로 겪는다. 하지만 자궁 세포들 중에는 이 지배구조에서 벗어나 자신만 성장을 계속하려는 놈들도 있다. 세포들이 과도하게 성장해 자궁 속에서 혹이 된 것이 근육세포로 구성된 자궁근종이다.

호르몬의 영향을 받아 생기므로 폐경 후에는 크기가 줄어들고, 반대로 임신 중에 커지는 경우가 많다. 약물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월경이 아닌데도 출혈이 생기고 빈혈이 있다면 효과가 없다. 이때 성교나 월경 시 통증이 나타나면 전문의의 진단에 따라 수술을 받아야 한다.

또 하나 대표적인 양성 혹 중 하나가 난소낭종이다. 난포의 성숙·배란·퇴화의 주기적인 과정에 이상이 생겨 난포 조직액이 배출되지 않고 쌓여 생겨나는 조직액 덩어리가 ‘물혹(囊腫)’이다. 정기 검사에서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많은데 심한 경우 월경통이나 질 출혈, 아랫배 통증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초음파 검사를 정기적으로 받으면서 추적·관찰한다. 그러나 검사 결과, 크기가 너무 크다거나, 갑자기 복통이 생기는 경우, 난소암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진단될 때 등 수술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도 있다. 따라서 전문의의 진단에 따라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얼마 전 심한 월경통으로 고생하는 한 젊은 여성 환자에게 자궁 검사를 권했다. 그랬더니 “전 아이도 아직 안 낳았는데 혹이 있으면 어떻게 해요” 라며 걱정스러워한다. 이 환자처럼 자궁근종·난소낭종과 같은 혹 질환을 막연히 두려워하며, 검사를 기피하는 여성을 많이 볼 수 있다.

자궁근종과 난소낭종은 비교적 흔한 산부인과 양성 질환이다. 환자의 증세에 따라 적절히 추적 관찰하면서 약물치료를 하거나, 수술을 하면 깨끗하게 치료된다.

강순범 서울대의대 교수·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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