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작기행>"老化시계" 존 메디나 著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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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늙고 싶지 않은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다.세상은 넓고 할 일은많은데 어느새 얼굴에는 주름이 깊어지고 머리칼은 희끗희끗,기억력은 옛날 같지 않으니….아무리 죽음에 초연한 사람이라도 한번쯤 인간은 왜 늙어가야만 하는가라는 고뇌에 싸이 게 마련이다.
7천7백만명에 이르는 베이비붐 세대들이 50줄로 접어들어 고령화 사회가 우리보다 한발 앞서 시작된 미국에서는 늙음에 대한 관심이 아주 높다.
워싱턴 대학의 존 메디나 교수가 최근 펴낸 『노화시계(TheClock of Ages)』(케임브리지 대학 출판부 刊)는 신체 구석구석의 노화현장으로 안내하는 대중의학서.우리 신체의 「시계」를 끊임없이 돌리고 있는 세포 60조(兆) 개의 신비한 움직임을 쉽게 이해시키고 있다.
세포가 분할되는 과정,신경간의 상호 교감방법,똑같은 골절인데도 청년기냐 노년기냐에 따라서 고통이 크게 달리 와닿는 배경 등이 쉽게 설명된다.다소 어려워질 수 있는 주제를 쉽게 풀어내기 위해 역사 속의 인물도 다수 등장시키고 있다.
요절함으로써 팬들의 뇌리에는 영원히 젊은 모습으로 살아있는 20년대의 전설적인 배우 루돌프 발렌티노.그림물감의 납성분이 중추신경계를 건드려 더욱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었던 화가 고야.54년간을 침대에 누워 지내면서도 거뜬히 아흔 까지 살 수 있었던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등 일화가 풍부하다.
서론에 이어 제2장인 「우리 신체는 어떻게 늙는가」에서는 신체기관과 세포의 자연적인 노화현상이 설명된다.머리가 흰색으로 세고 뼈가 부러지기 쉬운 상태로 변하고 심장의 펌프 기능이 떨어지는 이유를 설명한다.
나이가 들수록 심장의 펌프기능이 저하함으로써 나타나는 현상은여러 가지다.심한 운동이 갈수록 힘들어지는 것도 바로 심장이 폐로 공급하는 혈액의 양이 떨어지기 때문이고 기억력이 감퇴하고외부대상에 대한 반응이 늦어지는 것도 뇌로 공 급되는 혈액량이떨어지기 때문이다.
늙음은 한마디로 각 신체기관의 세포가 죽거나 신체에 젊음을 불어넣는 세포의 기능이 크게 약화됨으로써 일어나는 현상이다.그러나 노화는 서서히 일어난다.시력과 청력은 아주 서서히 떨어지지만 후각과 미각만은 특별한 사고나 장애가 없는 한 쉽게 변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제3장 「우리는 왜 늙어가는가」는 각 기관을 이루고 있는 세포의 활동을 집중 소개하고 있다.외부 환경의 압력에 적응하거나저항함으로써 세월의 「약탈행위」에서 살아 남으려는 세포들의 노력이 재미있게 그려진다.
손상을 입은 세포는 「수선」되거나 교체된다.그러나 노화는 피할 수 없다.
이 책에 소개되는 세포노화이론은 두 가지.「오류축적」(Error Accumulation)과 「유전프로그램활성화」(Genetic Program Activation)가 그것이다.오류 축적 이론은 세포가 세포내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고장」을 수선할 능력을 일부 상실하는 것을 노화로 설명한다.반면 유전프로그램활성화는 젊음을 유지하게 하는 유전자 프로그램의 작동 유무,또는 기능 저하 차원에서 노화를 파악한다.두 이론은 얼핏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 보완적인 관계라고 저자는 설명한다.저자에 따르면 노화현상이란 단순히 오류가 몇 해에 걸쳐 축적되는 것만으로 보기는 곤란하다는 것이다.분명하지는 않지만 어떤 유의 유전인자적인 프로그램이 작동하지 않을까하는 의견이다.즉 독성 노 폐물이 우리 몸에 축적되는 것은 유전자의 작용이 차단된데서 비롯될 수도 있고 독성 노폐물이 유전자의 작용을 차단한 결과이기도 하다는 입장이다.그러나 현대의학의발달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생체시계를 되돌리는 묘안을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이 책도 그런 문제에 20여쪽을 할애하고 있지만운동이나 식이요법 선에서 끝난다.
운동의 경우 노년에 삶의 질을 높이는 한가지 아이디어로 꼽힌다.운동이 주름을 줄이지는 못한다하더라도 근육 상태를 좋게 유지시켜준다고 한다.
반면 식이요법은 인간의 수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저자는 특히 칼로리 섭취를 줄이거나 노화방지제.호르몬을 사용할 경우에는부작용에 신경을 써야한다고 경고한다.
한편 노화의 주범인 유전인자를 분리해내려는 의학계의 노력도 활발하다.나이에 훨씬 앞서 백발이 되거나 노화현상이 뚜렷한 병을 일컫는 베르너 신드롬(Werner's Syndrome)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노화유전인자」가 최근 확인됐 다.메디나 교수는 이 유전인자의 확인을 「기적」으로 통하는 문을 연 일대사건으로 부른다.실제로 세계 각국의 연구실에서는 이런 성과에 고무돼 인간의 수명을 2~3배 늘릴 수 있는 신비의 유전자를 찾는데 몰두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수명이 희망대로 확장된다해도 그 다음에 펼쳐질상황이 걱정스럽긴 마찬가지지 않을까.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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