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문화’에 실용 접목하니 부자농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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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개실마을을 방문한 경남 산청군 주민들이 문화해설사에게서 마을 역사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경북 고령군 쌍림면 합가 1리에 있는 개실마을. 조선 중엽 무오사화 때 화를 입은 영남 사림학파의 종조인 점필재 김종직(1431~1492) 선생의 후손(선산 김씨)이 1650년께 은거하면서 이뤄진 집성촌이다.

47가구 100여 명이 사는 집은 옛집 그대로 개·보수하거나 옛 형태로 신축됐다. 제사·차례를 조선시대 양식 그대로 지내고 단옷날 창포물에 머리 감기, 설날 그네뛰기 등 세시풍속도 이어져 오고 있다. 20촌 이내 일가가 모여 살며 명절 때 종택에 모여 합동 차례를 지내고 촌수에 따른 규율이 엄격해 전통적인 ‘양반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요즘 이 양반 마을에 큰 변화가 일고 있다. 보수적인 양반 전통을 털고 농촌 체험마을로 변신, 대표적인 성공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8일 찾아간 개실마을의 한 건물에선 경남 산청군에서 온 남녀 40여 명이 엿 만들기를 체험하고 있었다. “오른손으로 쥐고 왼손으로 반쯤 감아서 당기십시오.” 마을 주민 이경남(65·여)씨가 엿가락 늘이는 법을 설명하자 산청군민들은 서툰 솜씨로 따라 했다. 빨갛던 엿이 하얗게 변하자 “신기하고 재미있다”며 함박웃음을 짓기도 했다. 조태종(46·산청군 삼장면 대포리)씨는 “개실마을을 벤치마킹하러 왔다”며 “고향에 돌아가 개실마을 같은 체험마을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탤 계획”이라고 말했다.

방문객들이 개실마을 식당에서 엿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양반 마을의 보수성 털어=개실마을은 2001년 고령군 주선으로 행정자치부의 ‘마을가꾸기 사업’에 선정돼 흙담·기와집·우물 등을 정비하면서 농촌 체험마을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양반 체면’을 내세운 주민들의 소극적 태도와 무관심으로 쉽지 않았고 방문객도 좀체 늘어나지 않았다. 종택 개방과 음식 판매 문제를 놓고 주민끼리 갈등을 빚기도 했다.

2004년 한과를 만들어 팔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유명 백화점 납품을 계기로 양반이 전통 기법대로 만든 한과로 알려져 날개 돋친 듯 팔렸다. 마을도 유명세를 타 방문객이 1만 명을 돌파했다. 이에 주민들은 체험마을 운영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거들떠보지 않던 사물놀이,엿 만들기, 대나무 물총·연 만들기 기술을 배우고 농업벤처·관광대학에 다니며 친절·청결 교육을 받는 등 열성을 보였다.

고령군 직원 김광호(42)씨는 “주민들이 체면을 접고 방문 학생을 손자·손녀처럼 대하며 깨끗한 방에서 정성스러운 음식을 대접하자 입소문을 타고 방문객이 2006년 하반기부터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현대와 전통의 접목=개실마을의 성공요인은 현대와 전통의 접목에 있다. 주민들은 민박객을 위해 한옥에 현대식 화장실과 목욕탕 등을 갖췄다. 양반의 예절과 역사를 가르치는 등 전통도 지켜 나갔다. 계절마다 다른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특히 엿 만들기, 대나무 공예 등은 다른 곳에서 쉽게 흉내 내지 못하는 인기 프로그램이다.

주민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결혼한 신랑·신부에게 전통혼례를 경험케 하고 전통음식을 대접하는 혼례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개실마을 문화해설사 김재호(43)씨는 “전국에 각종 체험마을이 500여 개나 돼 독특한 프로그램이 없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며 “이 마을은 전통과 현대의 조화 덕에 급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늘어나는 체험 수입=개실마을 방문객은 2007년 4만 명으로, 이 중 2200명이 민박을 했다. 올해는 8월까지만 3만6000여 명이 다녀갔다. 동시에 200명을 수용할 민박집 20가구의 방이 모자라 방학이 낀 7~8월엔 방문객을 다 받지 못했다. 연말까지는 6만 명 방문이 무난하단다.

지난해 총수입은 3억7500만원. 재료비 등을 제하고 체험마을 운영에 참여한 26가구가 평균 700만원의 인건비(순수익)를 올렸다. 주민은 참여 일수에 따라 하루 3만원의 일당과 연말 배당금을 받는다. 4인 기준 방 한 개 5만원, 한 끼 식사 5000원, 건당 체험료 3000~5000원씩을 받아 생긴 수입이다.

딸기·쌀 등의 친환경 농산물의 직거래 수입도 만만찮다. 올해는 6월 말까지 3억6000만원에 이어 연말 6억원의 수입이 예상돼 가구당 1000만원씩 돌아갈 전망이다.

개실영농조합법인 김병만(66) 대표는 “내년에는 총수입 8억원에 가구당 1200만원의 순수익으로 농사를 짓지 않아도 생활이 가능할 정도”라며 “주민들이 전국 최고의 체험마을 운영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 성월희(61·여)씨는 “노인이 어디 가서 한 달에 현금 100만원을 벌겠느냐”며 “돈을 버니 신이 난다”고 말했다.

고령=황선윤 기자 ,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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