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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EU - 팽창하는 유럽] 3. 獨 "동유럽 세금 덤핑 심각" 불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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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독일이 발끈하고 나섰다. 동유럽 국가들의 너무 낮은 법인세율은 '세금 덤핑'이라며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세금덤핑으로 독일 기업들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결국에는 실업자가 더 늘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다. 실업률이 11%를 넘나들고 지난 3월 기준으로 454만명에 이르는 독일의 실업 문제는 가장 민감한 현안 중 하나다. 특히 옛동독 지역은 실업률이 20%에 육박하고 있다. 올해 예상 경제성장률은 1.5%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지난 26일 "동유럽의 세금이 독일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것은 '하나의 유럽'에 걸맞지 않다"고 말했다. 슈뢰더 총리는 주간 포쿠스지와의 회견에서 "새 회원국들은 임금과 세율이 낮아 투자유치에 유리한 반면 뒤떨어진 인프라 시설은 EU가 재정지원을 통해 개선해줄 것으로 믿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독일의 법인세율은 39%로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의 15%, 폴란드와 슬로바키아의 19%에 비해 월등히 높다.

한스 아이헬 재무장관은 "독일의 일자리가 외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우리가 왜 지원해줘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야당인 기독교사회연합의 에드문트 슈토이버 당수도 "독일인이 낸 세금으로 일자리의 동유럽 이전을 지원할 수는 없다"며 법인세율 상.하한선을 정하자고 주장했다. 지금도 EU의 재정을 가장 많이 부담하고 있는 독일이 새 회원국들을 위해 더 많이 지출해야 할 것이라는 불편한 심기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EU는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역내, 특히 동유럽 지역의 역내 균형발전을 위해 3360억유로를 지원할 계획이다.

노조의 입장도 큰 차이가 없다. 독일 금속노조 베르톨트 후버 위원장은 "슬로베니아의 주당 기준 노동시간은 독일보다 13시간이나 긴 48시간이며 임금은 독일의 13%, 소득세율은 19%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개별 국가들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독일이 주장하는 세율조정은 불가능하다. 프랑스는 독일 편이지만 영국과 폴란드.아일랜드는 반대하고 있다. EU 확대담당 집행위원인 귄터 페어호이겐은 "신규 가입국들로서는 외국인 투자 유치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일이 시급하기 때문에 아일랜드처럼 투자가들에게 매력적인 조건을 만드는 일이 불가피하다"며 반대했다.

독일에서는 최근 일자리 유출과 관련해 기업과 정치인 사이에 애국심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루드비히 게오르그 브라운 독일상공회의소장이 지난달 "임금이 싼 동구권으로 생산시설을 이전할 것을 기업들에 권고한다"고 말하면서 시작됐다. 슈뢰더 총리가 이 발언을 '비애국적'이라고 비판하고 정부도 "기업인들이 경영이라는 좁은 관점에서만 바라본다"고 거들며 한동안 공방이 계속됐다.

한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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