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無노동 無임금' 까지 깨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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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공노대(公勞代) 산하 공공기관 노조의 대규모 쟁의에 뒤이어 확산되고 있는 자동차 노조의 동시 파업 움직임 속에서 노사(勞使)협의 기본 원칙들이 연이어 무너지고 있다.단체협상 대상이 될 수 없는 해직근로자 복직,노조의 위험작업 중지 권을 받아들인 회사들이 생겨나더니 기아자동차㈜에서는 노사간에 위로금이란 이름으로 파업기간에 대한 「무노동 무임금」원칙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합의까지 했다고 한다.
이 7년동안 숱한 노사분규의 혼란을 겪으면서 한국의 노사가 이루어 온 보람이 있다면 그것은 노사협의의 원칙을 한장씩 쌓아올린 것이었다.그 핵심중 하나가 바로 무노동 무임금원칙이다.이원칙은 파업(罷業)이라는 노조의 최후 결단에 범 할 수 없는 엄숙함과 권위를 실어주는 장치이기도 하다.이 원칙을 지키면서 결행(決行)하는 파업에 대해서는 회사 경영측은 물론이고 소비자인 국민과 규칙 감시자인 정부도 우선 엄숙한 느낌을 갖지 않을수 없다.
원칙을 쌓아나가는 대신 오히려 하나씩 허문다는 것은 그 사회가 가진, 그리고 가져야 할 무게를 내버림으로써 혼란을 일으키고, 그 혼란에서 질서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나침반을 마침내 파괴하는 행동이다.길게 보아 노동자에게도 이익이 아니다. 기아자동차측은 『과거에도 파업이 끝난 뒤에는 생계비(生計費) 보전을 위한 보조금을 지급해 왔다』면서 파업기간에 대해 30만원씩 위로금을 지급하기로 한 이번 노사합의가 결코 무노동 무임금원칙을 깬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무노동 무임금원칙을 세우기 위해 그 과정에서 양보한 위로금과,위로금 지급을 원칙으로 세움으로써 무노동 무임금원칙을파괴하고 만 것과는 뜨는 해와 지는 해 사이의 차이가 있다.전자가 낮으로 가는 것이면 후자는 밤으로 가는 것 이다.
더 이상 이런 사태가 만연해 나간다면 노동계의 일부 성급하고단기적 인기에 급급한 지도자 뿐만 아니라 해당 회사 경영진,원칙 수호 감독 임무를 게을리 한 정부도 결국 국민의 질책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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