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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神들이 발리에 내리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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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호 12면

1 발리에 가면 가장 많이 보게 되는 하얀 가데니아 꽃을 프린트한 튜브 드레스

올해로 8회째를 맞는 ‘2008 발리 패션위크(모다 발리 콘벡스 주최)’ 전야제가 있던 8월 25일 밤, 신들의 섬 발리 G.W.K 문화공원에서는 아시아의 힘과 동양의 아름다움으로 한껏 빛난 무대가 열렸다. 전야제 특별 초청 행사로 1시간30여분에 걸쳐 펼쳐진 한국의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의 화려한 패션쇼가 그 주인공.

“20년 전 화보 촬영으로 처음 발리에 왔을 때 한눈에 반했어요. 집집마다 있는 1000개의 사원과 다양한 꽃으로 둘러싸여 있어 ‘신들의 섬’이라고 하죠. 마지막 낙원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신비함, 아름다움, 소박함, 순수함을 모두 느낄 수 있는 곳이라 깊이 매료됐었죠. 이런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한국의 미를 세계에 알리고, 서로 또 다른 아름다움을 통해 동양의 신비한 멋을 재창조할 수 있는 무대를 가지게 돼서 기쁩니다.”

앙드레 김은 이번 무대의 의의와 소감을 말하면서 발리의 자연에서 받은 감동을 계속 언급했다. 평소에도 그는 꽃을 아주 좋아하기로 유명하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2008 발리 패션위크’의 주제는 ‘패션, 자연과 만나다(Fashion meets Nature)’였다. 앙드레 김은 이번 패션쇼를 위해 발리에서 자생하는 꽃과 신을 테마로 한 옷들을 새로 제작해 선보였다.

특별 출연한 배우 한채영과 박시후 외에 한국인 모델 7명과 발리·인도네시아 모델 20명이 참가했고 총 127벌의 의상이 6개의 테마로 나뉘어 등장했다. 첫 번째 테마는 ‘2009년 세계의 축제’로 2009년 봄여름 컬렉션 가운데 생동하는 젊음과 열기를 살린 타운웨어들이 등장했다.

2, 3 2009 봄여름 컬렉션 가운데 선보인 타운웨어. 스코티시 체크와 블랙 컬러의 조화가 강렬하면서도 열정적인 느낌을 선사한다. 어깨와 소매를 부풀린 투피스도 여성스러움을 강조한 디자인으로 눈에 띈다 4 G.W.K 문화공원에 설치된 거대한 독수리 상과 화려한 색감의 사진·그림을 보여준 두 개의 대형 모니터가 무대를 화려하고 장중하게 받치고 있다 5 인구의 80%가 힌두교라는 발리 섬에는 정말 수천, 수만의 신이 존재한다. ‘선의 신’을 모티브로 한 전통 문양을 디지털 프린팅한 시폰 드레스 6 패션쇼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 배우 한채영과 박시후

둘째 테마는 ‘신들의 땅-발리의 전설’이었다. 신비스러움을 간직한 발리 왕실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창조한 작품들과 발리의 아름다운 꽃과 자연을 모티브로 한 작품들이 화려하게 무대를 수놓았다. 특히, 화려한 색감의 독특한 프린트가 인상적이었다. “이번 쇼를 준비하면서 사전답사와 자료 조사를 위해 여러 차례 발리를 방문했어요. 그러면서 발리의 전통문양 한 점과 현대 작가가 ‘신’을 주제로 그린 작품 세 점을 구했죠. 이것을 디지털 프린팅해 옷에 사용한 것입니다.” 발리에 오면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가데니아(gardenia) 꽃도 의상을 과감하게 장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치자꽃이라고 하는데, 발리에서 자라는 품종은 훨씬 꽃송이가 탐스러워요. 가까이 가면 아주 귀한 향기가 나서 외국에서는 귀족적인 꽃으로 인식돼 있죠.” 화분 스무 개쯤을 의상실에 들여놓으면 별다른 향수나 방향제가 필요 없을 만큼 향기롭다고 설명한다. 튜브 드레스에 가득 들어찬 꽃송이들은 활짝 핀 모습이 탐스러워 실제로 향기가 느껴질 만큼 아찔한 매력을 선사했다.

이번 패션쇼에서 살짝 벗어나는 이야기지만 오는 10월, 앙드레 김은 경기도 기흥에 작은 아틀리에를 하나 개관할 예정이다. 대지 800여 평에 1층 100평, 2층 20평의 작은 건물을 지어 지금까지 수집한 아트 작품들을 옮겨놓을 작정이다. 갤러리라기보다는 조용히 사색할 수 있는 개인 연구소로, 700여 평 정원에서는 크고 작은 가든 패션쇼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화려한 색감의 프린팅이 무대에서 사라지고 셋째와 넷째 테마로 등장한 것은 ‘빅토리아 왕조의 로맨티시즘’과 ‘한국과 동양 왕국의 잊을 수 없는 환상’이었다. 앙드레 김 고유의 독창성이 흠뻑 묻어나는 서정적인 로맨티시즘 의상들이 조용히 무대를 채워 나갔다.

다섯째 테마는 ‘일곱 겹 베일의 불가사의’였다. 한국의 전통의상인 한복과 이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의상 일곱 개를 걸쳐 입은 모델 김태연이 목탁소리와 함께 홀로 무대에 등장해 한 겹씩 베일을 벗듯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때마다 600석의 객석에서는 작은 탄성이 일었다. 또다시 벗은 옷을 하나씩 주워 허리춤에 차곡차곡 이어갈 때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일곱 겹 의상의 어울림은 우리 한복 일곱 폭 치마의 풍성한 주름을 연상시켜 한국의 아름다운 선과 색의 미학을 보여주었다.

여섯째 테마는 ‘백조 성의 성스러운 결혼식’으로 로맨틱한 웨딩드레스들이 무대를 장식했다. 특별 출연한 한채영과 박시후의 연기가 빛났던 대목도 바로 이 부분이다. 이미 앙드레 김의 패션쇼에 서 본 경험이 있던 두 배우는 이번 행사로 처음 만난 사이지만 호흡이 잘 맞았고 손끝 처리와 고개의 각도까지 이야기하는 디자이너의 요구를 잘 따라주었다.

패션쇼가 열렸던 문화공원 G.W.K(Garuda 왕 독수리, Wisnu 힌두교의 보호의 신, Kencana 전차)는 울루와투 절벽지대에 있다. 덕분에 천혜의 자연을 좋은 무대 배경으로 쓸 수 있었고, 공원의 조형물인 왕 독수리 상도 웅장하면서 따뜻하게 무대를 감싸주었다. 발리 패션쇼만의 특별한 무대 연출은 아니었지만 쇼의 막이 오르면서 곧바로 무대와 객석을 향해 뿌려진 종이 눈은 더운 나라에서 열리는 특별한 공연에 특별한 느낌을 더해 주었다.

배경으로 설치된 두 개의 커다란 모니터를 통해 계속 등장했던 겨울 들판 풍경도 더운 열기로 가득한 관객들에게 묘한 환상의 시간을 선사했다. 발리의 전통 음악과 서양의 클래식, 한국의 가요와 국악이 함께 어우러진 음악 또한 패션쇼라는 인상을 떠나 하나의 문화 공연으로서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옷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한국의 음악·그림·사진 등 모든 문화적 감성을 골고루 보여줄 수 있는 뜻깊은 행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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