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에묻는다>성공회 나눔의 집 김홍일 신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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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대한성공회 나눔의 집.달동네 이웃과 벗해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 살림터다.지난 86년 서울상계동 도깨비시장 안 단칸방에서 처음 문을 열고 그동안 정릉4동,인천송림동,그리고 봉천동 고지대에 따로 집을 차린 나눔의 집이 올해로 창립 1 0주년을 맞았다. 나눔의 집은 비록 규모는 초라하나 무의탁 노인과의 결연을 주선하고 야학을 열며,무엇보다 생산자협동조합이라는 새 형식의 주민 자조(自助).자립운동을 펼쳐 소외된 사람들의 공동체운동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생산자협동조합은 주민 공동출자로 조합을 결성,달동네 주민들의가장 큰 문제인 고용 불안정을 해결하자는 「주민회사」다.상계동나눔의 집의 경우 93년 10명이 「실과 바늘 조합」을 만들어티셔츠나 봉제하청을 받아 납품했다.
아쉽게도 이 협동조합은 현재 자금.경영경험.기술자 등의 부족으로 쉬고 있다.
상계동 김홍일(金弘一.37)신부는 연세대신학대를 졸업한 그해,나눔의 집이 문을 연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집을 지키며 키우고 있다.91년 사제 서품을 받은 젊은 성직자에게 무엇 때문에이 길을 걷는가 묻는 것은 부질없는 우문(愚問) 일 수밖에 없다. 그는 화가 이철수씨의 판화 『새에게도 무게가 있습니다』를늘 마음 속에 되새긴다고 했다.고요한 바다에 떠있는 나룻배.한쪽 끝에는 돌탑이 서있고 다른 끝에는 새 한마리가 앉아있다.놀랍게도 배는 돌탑 쪽으로 기울지 않고 수평을 유지하 고 있다.
『그 그림을 보며 저는 어떤 것이든 영혼의 무게는 같다는 진실을 깨달았습니다.빈곤이 가셨다 하나 몇백만원의 돈이 얼마나 사람을 질곡 속으로 몰아넣는가를 저는 아직도 보고 있습니다.초등학교에서 무슨 물건이 없어졌는데 선생님이 「상계 4동 애들만남고 다 하교하라」고 했다더군요.상처입은 어린 영혼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픕니다.』 무슨 증거도 없이 다만 편견으로한 집단을 차별하고 사시로 보면 지금 가장 문제가 되고있는 상대적 빈곤 문제가 절대로 고쳐지지 않는다고 했다.더욱이 산동네주민들은 자식들에게 더 희망을 거는 법인데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희망에 상처를 주는 것은 죄악이라는 것이다.
『결국 누구든 자신의 자리에서 세상을 보며 각성해야 합니다.
유대의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이라는 랍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빈곤이나 환경.계급 등에 의한 갈등은 왜 그런지 몰라서 해결되지 않는게 아니다.그걸 보고 놀라고 각성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놀라워하는 능력을 회복할 때 이 세상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다」고 했습니다.하는 일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고 일의 중요성도 상대적이겠지만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바르게 존재하는가가아니겠습니까.』 어울려 사는 모습은 가령 이런 것이다.나눔의 집 바로 옆집은 가내 라벨공장이다.그집 대문 시멘트지붕 위 「손바닥 밭」에는 꽃과 채소와 나무가 함께 자라고 있었다.키작은향나무를 가운데 두고 장미.상추.맨드라미.열무.실파등이 어울려있다.거기 벌.나비가 찾아와 있었다.집이자 공장이요,화단이자 채마밭이요,또한 대문지붕인 그곳.산동네만의 아련한 아름다움,산동네 사람들만의 슬기이리라.
이헌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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