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홈뉴패밀리>29.달라지는 내조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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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가장(家長)의 출세를 위해 남편 직장상사 집을 찾아다니며 막일을 해주거나 인사철마다 수표가 든 케이크상자를 나르던 아내상은 이제 옛말.
「남편의 성공=승진이나 출세」의 등식을 거부하고 부부가 함께발전할 수 있는 참신한 내조법을 개발해 실천하는 신세대 주부들에게는 말이다.
서울이태원에 사는 주부 박미정(32)씨가 최근 생각해 낸 내조법은 남편 대신 책 읽어주기.
『우리 부부는 8년전 컴퓨터 스쿨에서 만나 결혼했는데 남편은지금도 제 컴퓨터 선생님이에요.저도 남편의 선생님이 돼줄 것이없을까 궁리하던 중 얼마전부터 「이야기 선생님」이 되기로 했어요.』 남편의 사회생활에 도움이 될만한 신간 및 실용서적을 읽고 요약해 들려주는 것.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에서부터 시오노 나나미의 책까지 다양하게 섭렵,줄거리를 들려주고 정말 감명받은 책은 억지로라도 읽게 해 독서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그 과정을 통해 일상에 묻혀버리기 쉬운 두사람의 애정을 확인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는 게 그의 「대독(代讀)내조 예찬론」이다. 매일 오후11시나 돼야 퇴근하는 남편의 영어공부 트레이너로 나선 서울신당동 고영옥(31)주부.매일 아침 그날 외워야 할 영어단어와 숙어.회화문장을 각각 두개씩 적어주고 외우게 한다.남편이 귀가하면 제대로 외웠는지 체크하고 매주 일 요일이면쪽지시험까지 본다는 것.
남을 가르치려면 내가 확실히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최근 영어학원까지 다닌다는 고씨는 『예전같으면 아무 생각없이 TV나 보던 시간에 머리를 맞대고 영어공부를 하니 부부 사이도 새로워지는 것같다』고 좋아한다.
정민경(36.성남시수정구신흥1동)씨는 「배둘레햄」이 날로 두꺼워지는 남편의 체형관리사를 자처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아파트 단지를 함께 뛰는가 하면 살이 찌지않도록 식단 관리에도 열심이다.
『혼자 하면 아무래도 중도에 포기하기도 쉽고 재미도 없지만 둘이 하니까 서로 감시자가 될 수 있어 좋아요.』 중국쪽 유통사업 진출업무를 맡고 있는 남편을 위해 중국관련기사를 열심히 스크랩하는 자료수집파,개업의(醫)남편이 간호사 확보로 애를 먹자 아예 간호사 양성학원을 다니며 간호사 자격증을 따낸 열성파도 있다.
이같은 남편 내조를 통한 「시간과 사랑 나누기」추세는 신세대부부들의 역학관계가 전통적 남편 우세형에서 동반자형으로 바뀌고있음을 보여준다.
5년간 독일 유학경험을 갖고 있는 번역가 선우미정씨는 『독일부부들은 「배우자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라는 의식을 갖고 있다』며 우리 부부들도 친구나 동료같은 입장에서 서로의 인간적 성숙을 도모하기 시작한 것에 대해 바 람직한 현상으로 평가했다.
이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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