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에게 선뜻 간 떼어준 효녀들 눈물 닦아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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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만 해도 건강한 사람의 간을 부분적으로 잘라내 환자에게 이식해 주는 생체 간이식은 아주 큰 수술이었어요. 수술 실패로 환자들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종종 생겼어요. 하지만 국내 의료진의 경험이 풍부해지고 수술 기법도 발달하면서 환자들이 이식 수술 때문에 사망할 확률(30일 수술 사망률)은 90년대 10~20%에서 5%로 떨어졌죠. 행여 자녀가 간을 이식해 주겠다고 나서도 ‘나 살자고 자식을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다’며 거부하는 부모도 있지만, 이 역시 기우입니다. 자녀가 사망한 경우는 한 건도 없어요.”

서울대병원 장기이식센터의 서경석(48·외과) 교수는 자신이 집도한 방차영(47)·김가이(18) 모녀의 병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 교수는 “서울대병원의 경우 간이식 수술 후 30일 이내 사망할 확률이 1% 안팎에 불과할 정도로 의학기술이 발전했다”고 덧붙였다. 국내 간이식 수술의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그는 지난해부터 간 공여자의 절개 상처를 최소화하는 수술을 시도해 왔다. 결혼도 안 한 젊은 여성이 부모를 위해 선뜻 간을 나눠주고는, 복부 한복판에 생긴 커다란 흉터 때문에 눈물 흘리는 모습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의 의학 수준이 수술 후 삶의 질을 고려하는 단계에까지 온 것”이라고 했다.

기존 수술법으로는 배에 커다란 ‘ㅗ’자, 혹은 벤츠자동차 엠블럼 모양의 흉터가 생긴다. 서 교수팀이 개발한 최신 수술법을 쓰면 ‘ㅡ’자 상처만 남는다. 복강경을 이용해 간을 절개한 뒤 잘라낸 간을 손상시키지 않는 한도 내에서 피부를 갈라 빼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피부체질과 미세봉합술 적용 여부에 따라 흉터는 훨씬 작아질 수 있다. 가이양에게도 이런 최소 피부절개술이 적용됐다. 성형수술을 하듯 상처를 아주 촘촘하게 꿰매기 때문에 가이양이 수술실에 들어가 있었던 8시간 중 절개한 피부를 봉합하는 데 걸린 시간만 3시간가량 됐다.

“얼마 전에도 아버지에게 간을 이식해 준 딸이 있었어요. 얼굴도 예쁘장하게 생긴 20대 여성이었는데, 수술을 앞두고 입원하면서 ‘선생님, 마지막으로 비키니 입어보고 왔어요’ 하는 거예요.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그런데 그 여성이 수술 후 찾아와서 ‘이 정도 흉터면 비키니도 다시 입을 수 있을 것 같다’며 고마워하더군요. 정말 뿌듯했죠.”

간이식은 말기 간질환이나 조기 간세포암 환자에게는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꼽힌다. 자신의 병든 간을 완전히 제거하고 새 간을 이식받는 것이기 때문에 병든 부분만 잘라내고 마는 간 절제술보다 재발 가능성이 작다. 하지만 4000만원 안팎의 비용이 들고, 이식받은 사람은 면역억제제를 평생 복용해야 하는 데다 일단 병이 재발하면 절제한 경우보다 진행 속도가 훨씬 빨라 효용성 논란이 있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1988년 서울대병원팀이 뇌사자의 간을 간경화 말기 여성에게 이식해 준 것이 최초의 성공 사례다. 뇌사자의 간을 이식하는 방법은 공여자가 한정돼 있고, 시간에 쫓겨 이식했다가 간의 상태가 좋지 않아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다. 대신 공여자가 이미 사망한 상태이기 때문에 별도의 희생이 없고 절제수술도 비교적 쉽다. 또 간 전체를 이식해 줄 수 있어 수술 효과가 크다.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에 따르면 이 같은 뇌사자 간 이식 건수는 2000~2007년 총 661건이었다.

반면 생체 간이식은 서로 혈액형이 맞고 간의 크기가 비슷하면 가능하기 때문에 공여자를 구하기가 비교적 쉽다. 또 공여자의 간 상태를 확인하고 철저히 준비한 후 수술을 진행한다. 대신 간을 절제하는 수술이 매우 까다롭고 공여자-환자의 이식 타이밍도 잘 맞춰야 한다. 이식해줄 수 있는 간의 크기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기도 한다. 현재의 의술로는 공여자의 안전을 고려할 때 70%까지만 잘라줄 수 있다. 서 교수는 “간은 재생능력이 뛰어나서 건강한 간을 잘라낸 경우 1주일 후면 남아있던 간의 두 배 크기로, 1년 후면 거의 원래 크기로 자란다”고 설명했다.

안전성이 확보되면서 생체 간이식 수술 건수는 훨씬 많아졌다.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에 집계된 국내 생체 간이식 사례는 2000년 총 171건에서 2007년 620건으로 늘었다. 올해는 7월 현재까지 이미 433건이 시행됐다. 서 교수는 “중국으로 가서 불법 간이식을 받던 환자들이 적지 않았는데, 올해는 베이징 올림픽 때문에 중국 정부의 단속이 심해지면서 국내 생체 간이식 수술이 더 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서울대병원에서 올해 이뤄진 49건의 생체 간이식 수술 중 절반이 넘는 28건은 자녀가 부모에게 간을 떼어준 경우였다. 가이양처럼 10대 자녀가 공여자로 나서 주변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기도 한다. 서 교수는 “우리나라에 아직은 효녀, 효자가 참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며느리가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에게 간을 나눠준 사례도 1건씩 있었다. 부모가 자녀에게 이식해준 것은 6건이었다. 이 가운데는 6월 29일 생후 60일 된 딸에게 아버지가 135g의 간을 떼어준 국내 최연소 간이식 수술도 포함돼 있다. 이 밖에 형제·남매 간 3건, 부부 간 4건, 기타 친척이나 지인 사이의 간이식이 6건이었다. 현재 공여자의 연령은 16~54세, 이식받을 환자는 가능한 한 65세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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