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기획 황혼연애 ①] “사랑 앞에 나이가 어디 있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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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황혼연애’가 우리 사회의 이슈로 떠올랐다. 드라마 속에서 노인들의 연애는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사춘기 소년·소녀보다 더 풋풋하게 그려진다. 점잖은 연세의 노인들은 어디서, 어떻게 누구를 만나는 것일까? 이들의 연애는 언제까지 음지에만 머물러야 할 것인가?


▶KBS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의 한 장면.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지난 7월 초 신문에 보도된 기사 제목이다. 내용인즉 이러하다.

한 80대 노인이 60대 후반의 여성과 사귀었는데, 여자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것을 알고 자신의 부동산 일부를 여성의 아들 앞으로 소유권 가등기를 해줬다.

그러자 여성은 갑자기 변심해 노인을 만나주지 않았다. 노인은 이 여성을 대상으로 “평생 반려자로 지낸다는 조건으로 가등기해줬던 것”이라며 부동산가등기말소청구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그러나 소유권 이전 등기 합의 사실을 인정하며 이 여성의 손을 들어줬다.

이 사건은 각 일간지와 뉴스를 통해 ‘꽃뱀에 당한 자산가 노인’의 이야기로 기사화됐다. 정확한 사실을 알아보기 위해 사건의 당사자였던 60대 여성 주모 씨와 직접 통화했다. “내가 재산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처럼 기사가 났는데, 절대 아니에요.”

주씨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노인과 만나 여행을 다니고 데이트를 하고는 했는데, 자신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것을 알게 된 노인이 먼저 부동산을 주겠다고 제안했다는 것. ‘평생 반려자’를 하겠다고 약속했다는 상대방 주장에 대해서도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그 사람이 자기 아들과 같이 사는데 어떻게 저와 평생 같이 살겠어요? 연세가 저보다 훨씬 많으셔서 재혼 등에 대해서도 상당히 보수적인데…. 사실 이번 소송도 다 그 아들이 진행한 거예요.”
주씨의 변호사를 통해 들은 재판 내용 역시 신문 보도와는 상당히 달랐다.

두 사람은 부동산 가등기를 하고 난 후에도 한동안 만남을 지속했다는 것. 문제는 노인의 아들이 가등기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였다. 아들은 펄쩍 뛰며 가등기 처분을 돌려 놓으라고 했고, 주씨를 직접 찾아가 땅을 내놓으라고 추궁하기도 했다.

그 이후 주씨는 노인과의 만남을 피하게 됐다고. 막상 노인은 재판에까지 간 이후에도 “내가 이 나이에 땅에 무슨 욕심이 있겠느냐”며 주씨의 친구에게 주씨와 계속 만나고 싶다는 의향을 수차례 전하기도 했다.

주씨는 자신의 명의로 아파트 한 채를 소유하고 있고, 아들과 딸도 각각 번듯한 직장에 다닌다. 집을 담보로 대출받아 자신의 친구 아들에게 돈을 빌려줬는데 이것을 돌려받지 못해 경제적으로 쪼들리기는 했지만 ‘꽃뱀’으로 나설 만큼 어렵지는 않았다는 것이 변호사 측의 설명이다.

결국 이 모든 법정공방의 시작은 노인의 재산을 돌려받으려는 아들이 벌인 일이었다. 주씨는 “그분이 아들의 말이라면 꼼짝 못한다”는 말로 노인의 처지를 전했다. 노인들의 연애가 공공연히 이뤄짐에도 이들이 자식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크고 작은 마찰을 겪는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이 사건은 노인들의 연애가 극단적인 방향으로 흘러가 법정공방까지 간 경우여서 주목받았지만, 사실 최근에는 노인들의 연애가 새삼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누구네 집 시아버지가 여자친구와 싸워서 심기가 불편하다더라” “누구네 시어머니는 헤어진 남자친구를 찾아 오라고 며느리한테 생떼를 썼다더라”는 둥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이야기가 부쩍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노인들의 연애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도 많이 부드러워졌다. 김수현 작가가 극본을 쓴 KBS 주말연속극 <엄마가 뿔났다>를 잠시 살펴보자. 3대가 모여 사는 집안에서 가장 큰 어른인 아버지(이순재 역)가 황혼의 로맨스에 빠져 두 근 반 세 근 반 가슴을 졸이는 장면들이 나온다.

글■박미소 월간중앙 기자 smile8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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