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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기획 황혼연애 ③] 노년의 성, “젊은이 못지않게 개방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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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옛날보다 남녀 노인들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시설이 개선된 복지관도 대표적 만남의 장소지만, 가장 잘 활용하는 공간은 바로 인터넷이다.

복지관의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배우거나 가정에서 어깨 너머로 배운 인터넷 실력이 이제는 제법 늘어 메일을 보내거나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것쯤은 요즘 노인들도 쉽게 한다고. 복지관 동호회나 친분이 있는 사람끼리의 모임도 웬만하면 인터넷 카페를 하나쯤 개설해두고 있다.

카페에 공개된 메일 주소로 메일을 보내 자신이 점찍어둔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는 일도 왕왕 벌어진다고 한다. 올해 66세 된 박순애(가명) 씨 역시 이메일을 통해 교제를 시작한 경우다. 그녀는 8년 전 남편을 병으로 떠나 보내고 혼자 살고 있다.

평소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았던 박씨는 지역 복지관에서 도우미와 상담업무를 하고 있었다. 다른 지역 복지관에 견학갔을 때 그 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여덟 살 연상의 남성과 만나 명함을 교환한 것이 만남의 시작이었다.

“그 분이 먼저 이메일을 보내면서 연락하기 시작했죠. 벌써 4년째 만나고 있어요. 별다른 것은 없고 가끔 만나 식사를 같이하고 가끔은 영화도 봐요. 서로 봉사활동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요.”

나이보다 7~8세는 젊어 보이는 박씨는 밝은 인상과 고운 얼굴 때문에 주변 노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그러나 남자들과 일정 정도의 선을 둔다는 것이 박씨의 데이트 원칙이다. “저는 결혼할 생각은 절대 없어요. 식사나 같이하는 가벼운 데이트 이상의 깊은 관계를 가질 생각도 없고요. 저에게 다가오는 분들에게도 이런 의견을 확실히 밝혀두는 편이에요.”

그러나 박씨처럼 ‘건전한 교제’만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황혼의 연애는 노인들의 성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취재 도중 만난 60~70대 노인들은 “이 나이에 창피할 것이 뭐 있냐”며 오히려 성에 대해 개방적이고 여유 있는 태도를 보였다.

부동산 가등기 문제로 ‘꽃뱀’ 의혹을 받았던 주씨 역시 연애의 진전 속도가 상당히 빨랐다. “그 분과 저는 원래 노인정에서 친구들 몇 명과 어울려 자주 화투를 치면서 놀던 사이였어요. 제 친구와 그분 친구 이렇게 넷이서 설악산 여행을 가자기에 별 생각 없이 선뜻 따라 나섰는데….”

방 두 개를 잡아 놓은 숙박업소에서 주씨의 친구와 그 노인의 친구가 쏙 한 방으로 들어가버리자 둘만 덜렁 남았다. 결국 그날 밤 두 사람은 관계를 가졌다고 주씨의 변호사는 전했다. ‘한국 노인의 전화’ 강병만 사무국장은 “실제로 성에 대한 욕구를 발산할 방법을 묻는 전화를 자주 받는다”고 밝혔다.

“특히 60대 이상 여성들로부터 이런 전화를 자주 받습니다. 남성들은 돈을 주고 여자를 사는 불법적 방법을 통해서라도 해소할 수 있는데 여자들은 그렇지 않아서죠. 그리고 여성들은 성관계 자체보다 남성과 데이트를 하며 설레는 느낌과 손을 잡고 포옹하는 스킨십에 대한 그리움을 자주 호소합니다.”

상담해오는 경우도 가지가지다. 하루에도 한 번씩은 자위를 한다며 외로움을 호소했다는 80대 여성을 비롯해 남성과 교제하기 위한 방법을 집요하게 묻는 여성도 있었다. “노인들이 기력이 없어 성욕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요즘에는 건강하게 늙는 분도 많고요. 노인들은 대부분 초조함을 느낍니다. ‘내 건강이 얼마나 더 갈까, 성적 기능이 얼마나 더 갈까’ 하는 마음에 교제하는 이성과 급하게 관계를 가지려는 경향이 있죠. 그리고 남녀 사이의 모든 일을 겪었고 알고 있기 때문에 뭔가를 따지거나 기다릴 이유도 없고요.”

강 국장은 노인의 이성교제 자체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편이다. 적적하고 외롭던 노년의 삶에 생기를 주고 활력이 돌게끔 해준다고. 그는 “데이트를 통해 느끼는 행복감이 사람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어 준다”고 밝혔다.

다만 상대를 3개월 이상은 만나보고 깊은 관계를 가지라고 말했다. 성급하게 다가가는 것은 오히려 관계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노인이 노년의 연애에서 행복을 만끽하고는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노인은 아직 자식의 굴레에 묶여 있다.

지역 문화체육센터에서 사교댄스를 배우는 68세의 장경자(가명) 씨는 요즘 속앓이를 하고 있다. “나도 우리 사교댄스 교실 사람들과 같이 술도 마시러 다니고 춤도 추러 다니고 싶죠. 그런데 우리 애들은 내심 집에 눌러앉아 손주나 봐줬으면 하는 눈치예요.”

남편과 사별한 지 12년째라는 장씨는 “며느리에게 가사를 맡기며 나도 다른 노인들처럼 재미있게 살아보나 했더니 육아가 발목을 잡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남성 노인의 경우 상대방에 대한 애정이 깊어 재혼하거나 살림을 합치고 싶어도 상속문제가 걸려 자식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그런 일로 자식들과 낯을 붉히느니 결혼을 안 하고 만다”는 것이 대부분 노인들의 의견이다. 정 같이 살고 싶으면 동거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고. 강병만 사무국장은 한 가지 상담 사례를 소개했다. 80세가 다 된 자신의 아버지가 나이 차이가 20살 정도 나는 할머니와 재혼하고 싶다고 밝혀온 경우였다.

이 여성이 호적에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자 상속문제로 골치가 아파졌다. 결국 이 남자는 ‘아버지가 임종하실 때까지 곁을 떠나지 않고 잘 모신다면 아버지의 재산 중 1억 원어치 부동산을 받고, 나머지 재산에 대한 상속권은 포기한다’는 내용의 각서를 쓰고 모종의 합의를 했다.

그나마 긍정적 징후는 아주 느리기는 하지만 노인들의 사랑과 성이 조금씩이나마 개방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각지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성교육 세미나’나 ‘연애 코치 강연’ 등이 열린다.

고령화시대에 노인들의 연애는 음지보다 양지가 어울린다. 숨길수록 비뚤어진 집착과 강박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1만 원 한 장에 성을 사고 파는 ‘박카스 아줌마’들을 없애기 위해서는 노인들의 건전한 사교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60대 이상도 이성관계 중요해”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이성교제에 대한 설문조사 실시 결과 절반 정도의 응답자가 ‘이성관계가 필요하다’ 혹은 ‘현재 이성친구가 있다’고 대답했다. 지난해 5월에 행한 이 설문조사는 김포시 노인복지회관을 이용하는 60대 이상 노인 100명을 대상으로 했다.

‘이성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대답을 한 노인은 35명이었고 ‘현재 있다’고 대답한 노인은 15명이었다. ‘필요없다’는 대답은 44명이 했다. 노년의 성생활에 대한 설문도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 ‘성생활이 꼭 필요하다’고 응답한 사람은 16명, ‘필요하지만 여의치 않다’고 대답한 사람은 40명으로 절반 이상이 성관계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변한 것이다. 반면 ‘굳이 필요없다’는 사람은 30명에 그쳤다.

서울 종로구보건소가 최근 종묘공원을 자주 찾는 60세 이상 노인 21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도 비슷했다. 절반 이상이 ‘정기적으로 성관계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글■박미소 월간중앙 기자 smile8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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