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이혼 前 냉각기 도입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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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쌍에 1쌍인가, 11쌍 가운데 1쌍인가. 최근 우리 사회의 이혼율을 놓고 보건복지부와 법원행정처 사이에 통계를 둘러싼 논란이 보인다. 이에 통계청은 매년 발생한 총 이혼건수를 해당 연도의 연앙인구(年央人口:7월 1일 기준 총인구)로 나눠 천분율로 표시하는 조이혼율로 이혼에 관한 지표를 삼는 것이 적절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통계는 흔히 객관적인 지표로 많이 사용되지만 조사 방법이나 조사자의 의도에 따라 위와 같은 극단적인 차이를 드러내기도 한다.

*** 초등생 25%가 한부모 가정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현재 우리 사회의 이혼율은 해마다 증가 추세에 있다는 점이다. 조이혼율을 두고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동거가 보편화한 유럽과 우리나라를 단순비교해서는 곤란하다는 데 동의하지만 통계가 통계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들과의 비교뿐 아니라 우리 사회 내부의 변화를 읽고 그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데 유용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이혼율이 문제가 되는 것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아도 지속적이고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며, 한 가정이 해체되는 이 사안에 대해 현재 사회 전체가 아무런 대책이나 대안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단순히 몇 쌍에 몇 쌍이 이혼인가 아닌가를 다투기보다 이러한 이혼율 자체가 논란이 되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 더 주목해 주기를 바란다.

얼마 전 만난 한 초등학교 교사는 현재 3학년 35명이 정원인 자신의 학급에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한부모 가정' 아이들이 9명이라고 들려주었다. 여기에는 재혼 가정은 포함하지 않았기에 실제 이혼을 경험한 가정은 더 많을 것이라는 추론이 크게 무리가 아닐 것이라 본다. 특별한 지역의 특별한 학교가 아니라 그저 서울 시내 평범한 공립 초등학교의 사례였다. 이것을 두고 이혼가정이 4분이 1이라고 해서는 곤란하겠으나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이혼을 가족 문제, 가족 복지의 차원에서 더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는 논거로 삼기에는 충분하다.

통계를 또 한가지 인용해 본다면 1990년 하루 이혼건수는 248건이었으나 2000년에는 329건이었고 2003년에는 458건이었다. 단순하게 보아도 이혼의 증가는 분명한 일이다.

따라서 이 사안에 대해 현실적이고 생산적인 논의가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시점인 것이다.

무엇보다 혼인과 이혼은 민법의 범주에 속한 것이므로 현행 법과 제도의 운용상 보완해야 할 부분에 관한 검토가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실제 이혼의 80% 가까이 차지하는 협의이혼의 경우 너무 쉽고 간편하며 세계적으로도 거의 없는 제도이기 때문에 이에 관한 법률적 검토와 정비가 최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이혼을 예방한다는 명목으로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건강가족기본법에 근거한 이혼 전 상담서비스 제도를 둘러싼 논란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최근에는 느닷없이 '이혼인증제'라는 이야기가 들리는데 솔직한 심정으로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 합의 이혼制 보완.정비를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창립 초기부터 50여년 가까이 주장해오고 있는 이른바 '이혼 숙려기간'의 도입은 이혼에 관한 충분한 법적 검토의 시간을 갖고 친권.양육권.재산문제 등에 관해 완벽한 합의가 이뤄진 후 이혼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혼에 관한 상담에서 상담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도 법률적 권한과 관련된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혼 숙려제도는 이미 서구에서는 보편화한 제도이며 그 효과가 충분히 검증된 것이다. 따라서 이 제도의 도입이 결과적으로 이혼을 줄일 수도 있겠으나, '이혼인증제'등으로 이혼을 예방하자는 것은 21세기 민주주의 사회에서 용납하기 어려운 발상이다.

절차나 과정에 있어 우선순위를 비롯한 냉정하고 깊이 있는 논의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가족 문제의 심각성에 비추어 전반적인 정책을 담당할 책임 있는 부서가 필요하다고 보며 그 이전에라도 관련 정부부처의 긴밀한 정책적 협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