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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글로벌 표준 만들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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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는 한국 금융산업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큰 상징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글로벌 스탠더드를 금융 경쟁력의 근간으로 삼겠다는 시장의 의지임과 동시에, 지난 수년 동안 한국 금융계가 진행해 온 체질 변화 노력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볼 수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금융산업은 눈에 보이는 양적 성장은 물론 보이지 않는 질적 변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우선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 강화를 꼽을 수 있다. 다양한 리스크 관리기법에 의한 포트폴리오 투자를 통해 수익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경영 기법을 적용해 금융 시스템 전체의 안정성이 강화되었다.

또한 금융지주회사 설립 등을 통한 지배구조의 개선과 내부통제 시스템의 선진화로 경영의 투명성이 제고되었다. 외국계 은행의 경우 영업부문과 심사부문, 자산운영 부문과 리스크 관리 부문이 내부적으로 상호 견제하면서 내부통제 시스템의 투명성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를 국내 은행들이 벤치마킹해 적용한 것은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선진 기업평가 및 신용평가 방법을 도입해 대출 심사과정의 투명성을 높인 것도 내실 경영을 다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

외국 금융사를 통해 선진 금융기법이 접목된 다양한 금융상품 및 서비스가 소개되면서 선의의 경쟁을 통한 금융서비스의 질적 향상이 이뤄졌다.

뿐만 아니라 금융 전문인력의 양성을 통한 금융경쟁력 강화도 빼놓을 수 없는 값진 성과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금융산업의 인적 경쟁력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금융산업이 진정한 세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한국 금융계는 지금 또다시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눈앞에 두고 있다.

내년 초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 금융업종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국책은행 민영화, 금산분리 완화 등 각종 제도 개혁 및 규제 완화가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이에 따른 외국 자본의 유입도 더욱 거세지면서 금융업계는 너나 할 것 없이 사활을 건 총성 없는 전쟁에 돌입해야 한다.

이미 전문 분야별로 글로벌 경쟁력을 지닌 외국계 금융사들이 국내 시장에 진입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국 금융시장이 외국 회사들만의 경연장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경계와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꼭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한국의 경쟁 무대는 이미 세계며, 글로벌 스탠더드를 배제한 경쟁은 더 이상 국제 무대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적극적으로 수용함과 동시에 한국 금융시장의 특성·장점을 충분히 살려 한국형 글로벌 스탠더드를 확립하는 것만이 미래에 금융 강국임을 자처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태미 오버비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