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아이 영재로 키우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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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교육에서 아버지의 몫이 커지고 있다. 놀이학교에 다니며 아이와 함께 즐기는 법을 배우기도 하고, 학원통학을 위해 운전기사를 자청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에게 맞는 교육커리큘럼을 직접 만들어 이를 실천하는 등 아빠노릇 제대로 하기란 그리 녹록지 않다. 자신만의 특별한 교육철학과 방법으로 아들을 후천적 영재로 키워낸 한 아버지의 얘기를 소개한다.

지난 20일 오전 10시 서울시 도봉구 도봉1동 정나연(43·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 전문위원)씨의 집. 20평 남짓한 집에서는 정씨가 초등학생 아들 은교(7)군과 함께 양궁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과녁이 예사롭지 않았다. 한자판 100여 장을 벽에 붙여놓고, 정씨가 활을 쏘면 은교가 해당 한자를 음독하는 ‘한자공부용’ 과녁이었다. 물론 한자판은 정씨가 직접 만든 것. 꽤 난해한 한자도 보였지만, 은교는 거침없이 줄줄 읽고 풀이했다.

은교는 38개월 때 영재교육기관인 영재교육학술원(KAGE)이 실시한 영재판별검사(추리력·지각력·공간능력·인지능력에 관한 검사)에서 전국 상위 1% 안에 들며 영재성을 인정받은 아이다.

생후 30개월에 웬만한 동화책을 혼자 읽을 정도로 한글을 익혔고, 한자도 5급 수준이다. 은교가 영재로 뽑히고, 또래 아이들보다 빨리 한글·한자·영어 등 공부에 취미를 붙인 건 100% 아빠의 열정 덕분이었다.

 
집중력 키우기는 ‘놀이’에서 시작된다

정씨가 아들교육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우연한 계기에서다. 은교가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인근 놀이터에 데려갔을 때였다. 엄마와 함께 나온 또래 아이들은 넘어지는 걸 두려워했다. 잠깐이라도 엄마가 손을 떼면 금세 울음보를 터뜨렸다. 그러나 은교는 달랐다. 형·누나들에게 다가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남보다 빨리 놀이기구에 오를 용기를 냈다. 정씨는 “아빠와 함께 다니는 아이는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도전의식은 창의성을 키울 수 있는 촉매제”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정씨는 놀이와 관련된 책을 찾아보며 집중력과 창의성을 키우기 위한 놀이법을 개발했다. 돌이 지나면서 탑쌓기 놀이를 함께 했다. “단순하게 보이지만, 아이는 무너뜨리지 않고 탑을 쌓으려고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집중력을 키울 수 있고, 탑이 왜 무너지는지 원리를 터득하면서 균형감각도 익힐 수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이를 비롯해 떨어진 동전 돼지저금통에 주워넣기, 퍼즐맞추기 등 난도를 높여가며 집중력을 강화시켜 나갔다. 정씨는 “공부에 도움되는 놀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일상적인 놀이에 집중력·창의력을 키우는 요소를 가미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아빠의 관심으로 언어를 깨우치다

은교가 갓 두돌이 지났을 때 정씨는 여러 교육전문가를 찾아다니다 “언어는 부모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가르치냐에 따라 무한히 발전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집에 돌아온 그는 한달 동안 아들이 사용하는 단어수를 파악했다. 은교는 엄마·아바·하루부지 등 딱 251개 단어를 사용했다.

정씨는 그림을 붙여넣고 해당 한글과 영어·한자를 조합한 언어판을 벽에 붙여놓았다. 예를 들어 ‘아빠’라는 단어를 가르치기 위해 자신의 사진과 함께 Father·父를 한장에 써놓고 시간이 될 때마다 익히도록 했다.

처음에는 은교가 쓰는 단어 위주로 하다 한달 여 뒤부터는 모르는 단어를 가·나·다 순으로 모아 벽에 붙여놓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5개월 쯤 됐을까, 아이는 자연히 한글을 깨쳐나갔다. 동화책을 읽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은교는 단어를 제외한 조사나 합성어 등을 몰라 해석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때부터는 책을 함께 읽으며, 문장을 통째로 익히게 했다. 한자어는 양궁학습법을 개발해 흥미를 주려 했고, 영어는 한글학습 때와 같이 그림을 활용했다.

몸을 비비대야 아이와 친해질 수 있다

은교가 네살 적 어느날의 일이다. 정씨는 한 대기업 행사를 맡을지 여부가 결정되는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있었다. 맞벌이 부부여서 은교는 인근 어린이집에 머물러야 했다. 그런데 이날은 좀처럼 부모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결국 그는 ‘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어린 은교를 프레젠테이션 자리에 데리고 갔다. 회의가 진행된 1시간 30분여 동안 은교는 아빠의 프레젠테이션을 보았고 “아빠, 멋있어”라는 한마디를 남겼다고 한다.

정씨는 이 사건(?)을 통해 아이와의 교감이 중요함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아이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먼저 아이와 친해져야 하고, 아이와 친해지려면 부모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려줘야 한다”며 “아무리 어려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후 정씨 가족의 주말은 은교를 위한 현장학습 시간으로 정해졌다. 직접 보고 배우며,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였다. 아이는 훨씬 밝아졌고, 관찰학습에 흥미를 들여 이제는 웬만한 풀과 새, 동물 종류를 섭렵하고 있다.

정씨는 “주위를 보면 ‘아빠는 술먹고 늦게 들어오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다. 하지만 많은 돈을 버는 것보다 아이가 하나하나 지식을 습득해 나가는 과정을 보는 즐거움이 더 크다는 걸 우리나라 아버지들이 알았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인터뷰를 마친 정씨는 은교와 함께 요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프리미엄 최석호 기자
사진= 프리미엄 최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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