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스타스토리>고독한 협객 추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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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우수에 깃들인 표정.음울한 분위기.심연을 연상케하듯 가라앉은눈동자.검은 장포에 어깨까지 닿는 긴머리를 날리며 석양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선 「고독」외에 다른 단어를 떠올리기 어렵다.
「추공(秋空)-가을의 빈하늘」이란 그의 이름도 그래서 붙여졌다.추공은 극소수의 중국문화권을 제외하면 세계 어디에도 없는 한국만화의 독특한 한 장르를 대표하는 인물이다.바로 무협만화다. 『무협은 동양의 SF입니다.서양의 그것이 과학적 상상력에 기초한다면 무협은 인간적 상상력을 극대화한다는 차이정도죠.』 그의 무협은 인간을 담고 있다.그것도 명리와 출세를 위해서라면혈육마저 부정하는 비정한 인간세계이기 일쑤다.자식을 잊거나 버린 아버지에 대한 복수가 담겨있는가 하면 아들과의 생이별도 있다.그의 출연작에 『비정무림(非情武林)』이란 이름이 붙은 것도그 때문이다.
『희극에 비해 비극은 보다 풍부한 정서를 독자에게 제공합니다.비극을 사랑하는 이유도 그래서죠.』 무협은 사마천의 『사기(史記)』중 『자객열전』『협객열전』에서 시작한 중국 고유의 문학장르다.사마천이 활동했던 한무제(漢武帝)시절은 협객의 의미가 크게 강조됐던 시기.오랜기간 중국을 위협해왔던 흉노족에 대해 통일왕조인 한이 비로소 공세를 취한 시점이고 따라서 무인의 위상과 역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협객들의 얘기를 다루던 무협은 이후 방사(方事)와 도가의 술법 등을 흡수해 신기하고(神) 괴이로운(怪) 세계를 그리게 되면서 차츰 인간세상과 동떨어진 모습으로 변질 돼갔다.추공은 이런 무협의 무대를 다시 인간세상으로 바꿔놓는 공로자이기도 하다.
추공의 「인간이 담긴 무협」은 무협만화의 전성기를 맞는 기폭제가 됐다.
현재 추공의 이름과 모습은 세차례의 성형수술을 통해 만들어졌다.81년 무송이란 이름으로 데뷔했던 그는 그해 한차례 성형수술후 이름과 얼굴을 무룡으로 바꾼다.86년 다시 성형한 뒤 이름도 추공으로 개명했다.얼굴윤곽은 보다 부드러워지 고 눈빛도 단순해진다.대신 표정은 더욱 자연스럽고 다양해졌다.87년 일본진출을 계기로 그는 초기의 거친 모습을 완전히 지우고 중성에 가까운 미남자로 성형했다.
『일본팬들의 욕구에 맞추기 위해서였습니다.한국만화시장의 「침략자」인 일본시장 공략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의 대가는 치러도 좋다는 각오였습니다.』그 결과 현재 그는 한국 만화스타중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인물이 됐다.87년 주간만화잡지 『모닝』에연재됐던 『대혈하』에 이어 95년부터 『애프터눈』에 연재중인 『용음봉명』으로 일본에서도 알아주는 스타가 됐다.인기순위가 3위까지 올라가면서 편당 출연료로 2천만원을 받는 거물이 된 것이다. 그의 출연작에는 어느땐가부터 꼭 이런 서문이 들어 있다. 『일본만화의 공세에 맞서 한국만화를 지키겠다.지켜봐달라.억지애정을 요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실력과 내용으로 정정당당히심판받겠다.』 〈시리즈 끝〉 ▶나이:26세 ▶데뷔작:86년 『검신검귀』 ▶대표작:『비정무림』『무사에게 보낼 꽃은 없다』『무림대천하』『촉산객』『추혼13절』등 다수 ▶신장:1백78㎝ ▶체중:68㎏ ▶지능지수:측정불가.한번 본 책은 그대로 외울 정도▶성격:냉혹.비정한 정의파.사랑엔 무관심 이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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