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산마을>18.태백시 금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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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최초」가 반드시 모든 영예를 가져가는 것은 아니다.
캘리포니아에서 금맥이 처음 발견된 곳은 수터라는 사람이 소유한 땅이다.그러나 그는 곧 이어 광란적으로 일어나는 골드러시 때문에 자신의 땅이 황폐화하는 것을 지켜봐야했고 결국 알거지가된다. 태백시에서 석탄이 처음 발견된 곳은 태백산 문수봉(1천5백17)아래의 두메산골 「금천(黔川)」.그러나 이곳은 태백 석탄산업의 호황을 전혀 누리지 못했다.처음으로 석탄덩어리가 발견됐지만 정작 자신들은 옆으로 비켜서서 옆 마을들이 번 창하는것을 묵묵히 지켜봐야만 했다.
『석탄산업이 사양화되는 것을 보면 차라리 석탄으로 재미를 못본 것이 더 나은지도 모르죠.』 금천토박이 정연대(53)씨는 『모든 게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말했다.그는 현재 2천여평의 밭에서 당귀를 재배하고 있다.
금천에서 석탄이 처음 발견된 때는 1926년.당시 황지에서 면사무소 소사로 일하던 17세의 장해룡이라는 사람이 금천 먹돌배기 언덕 근처에서 「검은 돌덩어리」하나를 줍는다.
얼마뒤 그 검은 덩어리는 지질조사를 위해 한국에 나온 삿포로전문학교 학생들에 의해 고열량 석탄으로 확인됐다.아울러 태백시에 엄청난 석탄이 매장돼 있다는 사실도 같이 밝혀진다.본격적으로 태백에서 석탄이 채굴된 것은 4년 뒤인 193 0년이었다.
그후 태백은 국내 최대의 석탄산지가 됐다.한창땐 연간 6백76만3천을 생산해 전국 석탄생산량의 36%를 차지하기도 했다.그러나 지난 89년부터 석탄산업합리화가 진행되면서 43개에 달하던 탄광이 이젠 4개밖에 남지 않았다.
사실 금천에서 석탄이 발견되리라는 것은 마을이름에서 예견됐다.금천의 옛날 이름은 거무내(黑川) 혹은 거무내미골이었다.비만오면 개천물이 검게 변하기 때문에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금천 서쪽에 우뚝 솟아있는 문수봉 주변은 지난해 호랑이 발자국이 발견됐다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금천은 그만큼 두메산골이다.실제로 금천 주위에선 호식총이 종종 발견되곤 한다.호식총은 사람이 호랑이에게 죽음을 당하면 명복을 빌던 자리를 말한다. 조선 영조때 장성리로부터 연일(延日)鄭씨 3형제가 이주해와마을을 이룬 鄭씨 집성촌 마을 금천은 「잣나무골」이라고도 불린다. 2백년전 鄭씨네가 잣나무골 마을 어귀에 두줄로 잣나무를 심었는데 그것이 지금은 두아름이나 되는 거목으로 자랐고 주위 산엔 잣나무가 많다.그래서 이 두메산골에도 7월과 9월엔 「밉지 않은」 좀도둑이 들끓는다.7월은 술을 담글 수 있 는 잣나무 약술을 따는 철이고,9월은 잣이 나는 철이다.외부사람들이 이때를 노려 「슬쩍」하는 것이다.
『도둑이라고 할 수도 없죠.나무에서 떨어진 잣 좀 주워간다고탓할 수가 있나요.가지고 가서 맛있게 먹으면 고마운거죠.』 사람좋아 보이는 정극남(62)씨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땅을 빼앗긴 미국인 수터는 땅을 찾기 위해 25년간 법원과 국회의사당을 돌아다니다 마지막엔 심장발작을 일으켜죽는다.그러나 금천마을 사람들은 결코 다른 사람들을 탓하지 않는다.
글=하지윤.사진=임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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