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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디지털 세상, 힘은 어디로 흐르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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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누구도 교황의 권력이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에 의해 무너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세계를 직접적으로 변화시키지는 않을지라도 세계와 역사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는 기술을 우리는 종종 만나게 된다. 피터 드러커는 『Next Society』에서 현대 세계를 창조한 첫번째 기술혁명을 구텐베르크의 인쇄기와 활판 인쇄술의 완성이라고 주장한다.

▶ 촛불 시위에 참가한 20대를 포함한 젊은층들. 그들은 이번 총선에서도 강력한 변수로 떠오른 바 있다. 인터넷 공간을 장악한 데 이어 휴대전화로 ‘무장’한 채 효율적인 연대에 빠르고 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디지털 세대인 셈이다. 그 디지털 권력이 ‘다원적 중심’을 창출할 것인가? 그것이 과제다. [사진=오종택 기자]

인쇄술이 완성(1455년)되고 60년이 흐른 뒤 마르틴 루터의 독일어판 성경은 수천부씩 인쇄돼 순식간에 팔려나가면서 개신교를 낳게 된다. 이후 개신교는 유럽의 절반을 정복하고, 나머지 반을 차지하고 있던 가톨릭 교회가 스스로 개혁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루터는 신앙을 개인의 삶과 사회의 중심으로 되돌려놓기 위해 새로운 인쇄 매체를 의도적으로 사용했다. 그 후 150년간 유럽은 종교개혁·종교폭동·종교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인류 역사를 바꿔놓은 기술혁명의 두 번째 사례는 케빈 켈리의 『디지털 경제를 지배하는 10가지 법칙』에서 찾을 수 있다. 1970년 후반 이란의 팔레비왕은 정적 호메이니를 파리로 추방하고 이란 내의 언론을 통제함으로써 프랑스 파리에 있는 호메이니가 이란 민중과 접촉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호메이니에 동조하는 이란의 성직자들은 당시 집권자가 의심하지 않던 기술인 카세트 테이프를 이용했다. 매주 파리에서 호메이니의 선동적인 연설을 값싼 녹음기로 녹음해 이란으로 몰래 들여보낸 것이다. 그러면 성직자들은 그 테이프를 200달러짜리 복제기로 무한정 복사해 이란 민중에게 나누어 줬다. 매주 금요일이면 호메이니의 설교는 이란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호메이니 추종자들로 인해 평범한 테이프가 어느 날 갑자기 광역 네트워크로 변해 버린 것이다. 켈리는 미래에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무리의 힘을 이용하는 조직이 권력을 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피터 드러커가 넥스트 소사이어티로 이야기한 지식 사회로 접어든 지금 네트워크로 연결된 무리의 힘은 어디에 있는가? 그 답과 기술혁명의 세번째 사례가 담긴 책이 『디지털 권력』 이다.
2002년 월드컵, 대통령 선거, 여중생 추모 촛불 집회, 그리고 17대 총선까지 우리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권력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여론 형성과 정보교환, 새로운 의제 창출과 사회 운동을 통해 디지털 권력이 나타난 것이다.

『디지털 권력』의 저자들은 디지털 권력을 ‘권력과 정보통신기술 네트워크가 결합하면서 나타나는 사회의 권력관계 문제와 권력현상’으로 정의한다. 그렇다면 디지털 시대인 지금 인터넷과 디지털이 만들어내는 권력의 모습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이시대를 이해하는 중요한 하나의 키가 될 수 있다.

디지털 권력의 기본적인 모습은 네트워크 속으로 들어온 모든 개체에게 대부분의 정보가 보편화되는 것이다. 즉 네트워크 속에서 정보는 다수에게 자유롭게 전달되고 쌍방향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통제 관리인인 정치가 등이 관리 대상자와 함께 서로 통제를 받고 영향을 미치는 관계가 되어 가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pan(모두)과 opticon(본다)의 합성어인 ‘파놉티콘’(panopticon), 즉 ‘모두 볼 수 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모두가 서로를 볼 수 있는 디지털 네트워크에서 권력은 분산되기 때문에 디지털 권력의 특징을 투명성·개방성·윤리성이라고 보는 시각도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디지털 권력, 디지털 네트워크 세상에서는 개체 간의 정보 평등과 권력 평등이 완전히 구현되고 있는가? 이 책에서는 디지털 권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 몇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가 정보 격차의 문제이다. 이는 컴퓨터와 인터넷 등 디지털 도구를 보유하고 있는 정도와 활용 능력에서의 상대적 차이를 말한다. 스페인의 소설가 세르반테스는 16세기에 이미 이 지구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 즉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표현을 빌리면, 21세기 정보시대에는 정보를 다룰 줄 아는 부자와 정보를 다루지 못하는 빈자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 정보 격차가 디지털 도구를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세대와 계층, 그렇지 않은 세대와 계층을 나누고, 디지털 문맹에게는 사회 시스템과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이다.

두번째 문제점은 정보의 왜곡현상이다. 홍수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마실 물 한 컵이라고 한다. 그렇듯 정보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 역시 쓸 만한 정보이다. 하지만 새로운 디지털 네트워크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입소문·음모론·편집증이 아무런 제재없이 흘러다닐 수 있다. 이 때문에 네트워크가 매스 미디어(Mass Media)에서 ‘혼란 미디어’(Mess Media)로 이동했다고도 표현한다.

물론 이를 통해 공동체의 어두운 면이 드러나게 되어 투명성을 높이기도 하지만, 왜곡된 정보가 보편화돼 디지털 권력이 왜곡된 의사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나타나는 것이 새로운 문제점으로 대두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잘못된 민간요법이 디지털 네트워크를 타고 모든 구성원에게 전달되어 국민건강이 위협받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디지털 권력에 의한 의사결정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사실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도처에 존재하는, 믿을 수 있는 정보 네트워크의 구축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다.
디지털 권력의 세번째 문제는 디지털의 특성과 반대되는 ‘집권화된 통제’이다.

디지털화가 앞서 진행된 기업의 경우를 살펴보면 경영정보 시스템의 발전을 통해 모든 관리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면서 의사결정 구조를 분권화하는 듯하지만, 역으로 컴퓨터화된 시스템은 중앙에 위치한 관리자에게 주변의 모든 정보를 집중시켜 중앙의 의사결정을 강화하게 된다. 즉 기능의 분산을 전제로 하는 경영정보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오히려 조직은 분권화에서 재집권화로 바뀌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일반사회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디지털의 일반 속성 중 하나는 강력한 소수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디지털 네트워크에서는 보다 다양한 의견과 생각이 토론될 수 있는 디지털 민주주의와 다원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네트워크는 어디까지나 인간이 활용하는 새로운 기술이어야 한다. 주체인 인간이 디지털 권력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권력을 통해 보다 발전된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니컬러스 네그로폰테가 『디지털이다』(커뮤니케이션북스)에서 주장했듯이 네트워크의 진정한 가치는 기술이나 정보보다 인간과 공동체에 있다. 이제 우리 모두가 디지털 권력의 다원적 중심이 되어야 한다.

서진영 경영학박사·자의누리 대표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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