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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이 등불 … 어둠의 10년 터널 벗어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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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파산 위기에 몰리니 장삿꾼 김석만에게 남은 건 신용이란 밑천뿐이더군요. 직원·협력업체들이 기꺼이 고통을 분담해준 덕분에 그 밑천이 바닥나지 않았고 결국 10년만에 화의를 졸업하게 됐지요.”

10년만에 채무의 99%를 해결하고 최근 울산지법으로부터 화의종결 결정을 받은 신한건설의 김석만(55)회장은 21일 “긴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오는데 신용이 등불 역할을 해줬다”고 회고했다. 신한건설은 전국 도급순위 209위로 울산 향토기업으로는 최대 규모다.

국제통화기금(IMF) 한파가 몰아닥친 1998년, 신한건설은 연대보증을 섰던 업체들이 줄도산하자 그 여파로 2440여억원의 채무를 짊어져 회사 존립 불투명한 위기를 맞았다.

당시 경영난을 견디지 못한 많은 기업주들이 부도나 파산으로 회사를 버리고 자신의 살길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김 회장은 “나를 믿고 자금·자재를 대준 사람들을 배신할 수 없다”며 법원에 화의를 신청, 99년 4월 화의개시 결정을 받았다.

화의(和議)는 파산에 직면한 개인·기업체에게 회생할 기회를 주기 위해 법원이 채무 변제시기와 금액·이율 등을 조정하는 것으로 화의가 개시되면 법원에 자금 현황과 채무이행 상황을 정기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직원들까지 화의보다 파산을 건의했다면서요.

“이자가 최고 연 53%까지 오르는 상황이었으니 2000억이 넘는 빚을 다 갚고 회생하는 건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거였죠. 차라리 빨리 털어버리고 새출발하는게 낫다고 우기더군요. 화의가 결정돼도 끝까지 살아남는 업체는 100에 2~3곳이 될까말까라면서요. 하지만 그건 장삿꾼의 최대 밑천인 신용을 버리라는 거잖아요.”

-회생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을텐데.

“없는 집 제삿날 돌아오듯 하는 채무변제 일정을 따르느라 그야말로 피눈물 나는 시절이었어요. 살던 집을 포함해 150억원이 넘던 개인재산을 몽땅 채무이행 담보로 내놓고, 170여명이던 직원을 30명 수준으로 줄이고, 요즈음 시세로 3.3㎡당 800만원이 넘는 토지 3만여㎡를 10분의1 값에 처분하고, 화의절차 중이라는 이유로 제1금융권을 이용할 수 없어 종금사에서 140억원을 빌리며 1년에 60억원의 이자를 물고…. 2004년 향토기업으로는 유일하게 독자적인 아파트 브랜드 ‘디아체’를 개발, 북구 중산동 633가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4000여 가구를 공급하면서 차츰 허리를 폈습니다. 지난달 22일까지 총 2440억원중 99.84%인 2360억원을 갚고 화의종결 신청을 했죠.”

-신용이 밑천이라고 했는데.

“채무자들이 법원 보호대상 밖의 개인 부동산 담보를 처분해 빚을 회수할 수도 있었고, 따놓은 공사도 협력업체들이 선투자해주지 않았다면 날아가버렸을 거고…. 채권자·협력업체들이 김석만이는 빚 떼먹을 사람 아니라고 믿어주지지 않았다면 주저앉는 건 시간문제였죠.”

-구조조정당한 직원들은 어떻게 살고 있나요.

“요즘도 종종 연락하고 지내는데 다행히 다들 잘 있다고 합니다. 이제 회사가 정상화됐으니 직원을 늘릴 기회가 생기면 최우선으로 받아줘야죠.”

-앞으로 계획은.

“이자가 절반수준인 1금융권을 이용할 수 있게 됐어요. 전국적인 부동산 경기 침체가 걱정이지만 이제부터 진짜 시작입니다. 지금까지 연간 1000만원 정도 들여 지속해온 국가유공자 주거개선사업도 더 확대할 생각입니다.” 

이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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