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임료는 현금으로, 진료비는 친척 통장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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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국세청에 신고한 평균 소득은 18억4000만원, 세무조사 결과 나타난 실제 소득은 33억6000만원.

국세청이 올 1월부터 변호사·의사 등 고소득 자영업자 199명에 대해 세무조사를 벌인 결과다. 세금을 줄이기 위해 실제 소득의 55% 정도만 신고한 것이다. 탈세 혐의가 포착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세무조사이긴 하지만, 고소득 자영업자들이 소득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는 행태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세청은 이들에게 1271억원의 세금을 추징하고, 10명은 검찰에 고발했다고 21일 밝혔다.

국세청에 따르면 법무법인 대표인 김모 변호사는 사건을 의뢰한 고객들에게 수임료를 현금으로 내면 깎아 주는 등의 방식으로 현금 결제를 유도했다. 또 각종 공증 업무는 법무부의 감독을 받게 되면서 건수 조작이 어려워지자 수수료를 실제 받는 것보다 적게 신고했다. 이렇게 신고하지 않은 소득이 16억원이었다. 김 변호사는 7억원의 소득세를 추징당하고 벌금도 내야 했다.

서울의 성형외과 원장 이모씨는 세무신고가 이뤄진 진료 차트만 병원에 두고 보험 대상이 아닌 고액 수술 환자의 차트는 다른 장소에 별도로 보관했다. 이씨는 진료비를 친인척 명의의 차명계좌로 송금받아 9억원을 빼돌렸다. 그는 4억원을 추징당하고 검찰에 고발됐다.

치과의사 최모씨는 턱관절 환자 등 치료비가 비싼 비보험 환자를 진료한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독특한 수법을 썼다. 비보험 환자라도 진료 과정에서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시술이 이뤄질 수 있는데, 아예 이런 환자 치료는 건강보험공단에 진료비를 청구하지 않은 것이다. 현금으로 ‘목돈’을 챙기기 위해 ‘푼돈’은 포기한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빼먹은 소득이 19억원이었다. 최씨는 10억원을 추징당했다.

국세청은 이날부터 성실하게 소득 신고를 하지 않은 136명의 고소득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8차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이현동 국세청 조사국장은 “소득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는 업종을 선별해 중점 조사할 것”이라며 “주요 대상은 성공 보수를 누락한 변호사와 현금 거래를 한 성형외과·치과 등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병·의원 중에는 연말정산 간소화 제도에 따른 의료비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곳이 포함됐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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