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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성(姓)과 성(性)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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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베이징 올림픽 경기장에서 열심히 땀 흘리는 한국 선수의 등에서 ‘KIM’ ‘LEE’라는 성(姓)이 자주 눈에 띈다. 한국에는 286개 성씨에 4170개의 본관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지만 몇몇 성씨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탓이다.

물론 인구가 13억 명이나 되는 중국에도 성씨가 500개 정도에 불과한 것을 보면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니다. 하지만 일본의 30만 개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성씨는 부계(父系)를 통해 전해져 왔다. 이스라엘에서는 3000년 전부터 사원의 사제들이 코헨(Cohen)이라는 성을 사용했다. 서양에서는 12세기께 직업이나 출생지만으론 더 이상 성인의 이름이나 신분을 분간하기 어렵게 되자 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스티브 존스 『자연의 유일한 실수-남자』).

중국에서 성씨가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2000년도 더 전의 일이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을 통해 또 한 번 인류의 스승으로 부각된 성현 공자(孔子)의 후예는 중국 대륙 내 250여만 명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3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년에 나올 ‘공자세가보(孔子世家譜)’ 수정판에는 최소한 180만 명의 공자 후예가 수록될 전망이다. 공자의 후예이면서도 족보에 실릴 근거자료가 없는 사람들은 DNA 감정을 통해 입증되기를 바라지만 족보편찬위원회에서는 이를 거부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부계를 상징하는 것은 Y염색체다. 성씨가 대대로 이어지듯 성(性)을 결정하는 Y염색체는 아버지와 아들을 유전적으로 잇는 구실을 한다. 남자의 경우 22쌍의 일반 염색체와 성염색체인 Y염색체와 X염색체를 하나씩 갖지만 여자는 두 개의 X염색체가 쌍을 이룬다.

Y염색체에서 단백질 생산을 결정하는 유전자 숫자는 X염색체에 비해 10분의 1에 불과하다. 색맹·자폐증·혈우병 같은 유전자들이 남자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것은 하나뿐인 X염색체가 고장났을 경우 보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부 학자들은 Y염색체의 질이 점점 떨어져 12만 년쯤 후에는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근 영국 인디펜던트지 보도에 따르면 영국에는 남편이 아내의 성을 따르는 새로운 풍조가 등장했다고 한다. 아직은 기존 관습 때문에 혼인신고가 아닌 별도의 법적 절차를 밟아야 바꿀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사회 관습의 변화, 생물학적 진화의 결과로 성(姓)과 성(性)의 구분도 없어지는 시대가 도래할지 누가 알겠는가.

강찬수 환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