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 없었다면 올림픽도 못 열었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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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중국 후난성 샹탄시 사오산의 마오쩌둥 옛집은 비가 내린 17일에도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참배객들이 줄을 이었다. 입구에 걸린 글씨(모택동동지고거)는 1983년 이곳을 방문한 덩샤오핑의 친필이다.

‘물을 마시면서 그 근원을 생각한다(飮水思源)’는 중국 성어가 있다. 자신의 좋은 상황을 만들어준 뿌리를 잊지 않고 새긴다는 중국식의 행동 철학이다. 요즘도 마찬가지다. 베이징 올림픽이라는 세계적 행사를 치르는 중국인들은 오늘의 상황을 있게끔 만든 주인공 마오쩌둥(毛澤東)을 여전히 잊지 않고 있다.

올림픽이 성대하게 치러지는 17일 마오쩌둥의 고향인 후난(湖南)성은 그에 대한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세계적인 초대형 행사로 올림픽을 치르게 된 중국의 저력을 그에게서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후난성 중심 도시 창사(長沙)에서 남쪽으로 100여㎞ 떨어진 마오의 고향 샹탄(湘潭)시 사오산(韶山). 중국이 올림픽을 유치한 7년 전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전국 각지에서 관광버스와 택시를 빌려 엄숙한 분위기에서 성지 순례하듯 마오의 옛집을 찾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무거운 분위기가 사라진 요즘은 휴일 가족 나들이하듯 아우디·벤츠 등 고급 승용차를 몰고 와 하루를 즐기는 이들이 많았다. 이 때문에 마오의 옛집으로 들어가는 동네 어귀는 고급 승용차들로 가득차 마치 임시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중국 경제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을 하면서 제일 먼저 설치한 선전(深) 경제특구에 산다는 사업가 허(賀·39)씨는 “주말에 가족과 함께 뜻깊은 시간을 보내려 6시간 동안 승용차를 몰고 왔다”고 말했다.

이날 마오의 고향 마을에는 적잖은 비가 내렸지만 관람객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마오의 유년기 발자취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 기다렸다. 덩샤오핑이 1983년 4월 이곳을 찾아 직접 썼다는 현판 ‘모택동 동지 고거(故居·옛집)’를 배경으로 연신 기념촬영을 하기에도 바빴다.

후난성 직속의 사오산 관리국 탄뤄쑹(譚邏松) 선전처 처장은 “매년 약 400만 명이 찾아온다. 올해는 수해도 있었고 올림픽이 열려 관람객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는데 여전히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탄 처장은 “마오 주석이 청년기에 ‘체육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해 국민의 체력을 길러야 나라가 부강해질 수 있다고 설파했다”며 “마오 주석이 중국의 올림픽 개최를 이미 90여년 전에 내다본 것 같다”고 말했다.

올림픽을 맞는 마오쩌둥 집안사람들은 하루 종일 TV를 켜놓고 열정적인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마오의 집안 조카뻘인 마오위스(毛雨時·62) 사오산촌 서기는 “우리 마오씨는 장시(江西)성 지수이(吉水)현이 뿌리이고 마오 주석이 20대손, 나는 21대손”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중국이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었던 것은 개혁·개방을 통해 종합적인 국력 수준을 끌어올린 것이 가장 큰 요인”이라면서도 “새 중국을 건설한 마오 주석이 기초를 잘 닦은 공도 크다”고 강조했다.

올림픽 성화 봉송주자로 뛰었던 그는 “마오 주석은 수영과 탁구에 능했다”면서 “이번 올림픽에 마오 주석이 참가했다면 탁구에서는 메달을 따기 쉽지 않았겠지만 수영에서는 틀림없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것”이라고 확신하듯 말했다.

개혁·개방이 본격화한 84년 단돈 1.7위안(약 255원)을 종자돈으로 마오의 옛집 앞에서 녹두죽 장사를 시작해 지금은 전국에 200여 개 체인점을 보유한 마오자판뎬(毛家飯店)의 탕루이런(湯瑞仁·78·여) 회장은 올림픽 얘기가 나오자 어깨춤을 추며 기뻐했다.

어릴 때 마오 주석을 직접 만났다는 그는 “이번에 중국 여자 선수가 역도에서 첫 금메달을 따는 광경을 보고 ‘여성이 일어서는 날이 중국 혁명이 승리한 날’이라고 했던 마오 주석의 말씀이 떠올랐다”고 감격해 했다.

올림픽을 계기로 마오쩌둥을 신화적인 존재로 승격시키고 있는 분위기도 느껴졌다. 후난성 선전부 관계자는 “6월 5일 마오의 고향에서 성화 봉송을 할 때 갑자기 하늘에 붉은색·노란색·초록색의 둥근 원 3개가 나타났다”고 전했다. 마오 주석의 옛집을 찾아 간절히 기도를 올려 중앙정부에서 고관으로 승진했다는 관리 얘기도 들렸다. 중국인들은 평소 “마오쩌둥이 없었다면 새 중국이 없었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런데 마오의 고향 사람들은 요즘 “마오쩌둥이 없었다면 중국의 올림픽 개최가 불가능했다”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사오산(후난성)=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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