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의 明暗 비정규직] 下. 정규직의 양보가 관건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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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사회 갈등의 불씨가 된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은 무엇일까.

노동문제 전문가들은 "정규직의 양보와 경영계의 협조를 전제로 한 상생(相生) 전략만이 해결의 열쇠"라고 입을 모았다.

서강대 경제학부의 남성일 교수는 "현재의 노동시장은 방안(정규직)이 덥고 바깥(비정규직)이 추운 상황"이라며 "바깥 온도를 올리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방안 온도를 내리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차별'과 '차이'는 엄격히 구분돼야 하며 노동계에서도 비정규직 처우개선에 관한 무리한 요구를 자제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상생의 전략을 실현하기 위해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각종 세부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처방이다.

시장경제 원칙을 존중해 개별 기업의 실정에 맞도록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이를 줄여나가는 한편 장기적으론 '동일임금-동일노동'의 직무급 체계를 확립,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해고와 채용이 용이한 시스템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상생을 위해 정규직의 양보가 필요하다는 데는 노동계도 수긍하는 편이다.

한국노총의 김성태 사무총장은 "특별 성과급 등이 정규직 노동자만의 잔치가 아니라 비정규직에도 골고루 돌아가야 한다"며 "그러려면 대기업 노조의 협조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규직 노조의 양보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지난 3월 한국노총이 실시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이 같은 사정을 엿볼 수 있다. 설문에 응한 단위노조 대표자 176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102명이 "비정규직과의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한 활동은 이해하지만 현실적으로 동참은 어렵다"고 답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규직의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해선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많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정일 수석연구원은 "정규직의 임금인상 상한을 정해 무리한 임금인상을 억제하고, 비정규직은 생산성 기여도에 따르는 임금제를 도입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정규직이 솔선해 비정규직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은 이미 일부 기업에서 나타나고 있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지난해 사측과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기로 약속했다. 골자는 비정규직도 정규직이 임금을 인상할 때 인상률의 60% 정도를 따라 올린다는 것이다.

특히 현대차는 정규직을 신규 채용할 때 40%는 하청 노동자 중에서 우선 채용하기로 했다.

후생복지면에서도 정규직 근로자들과 차별이 거의 없어졌다고 한다. 과거엔 정규직 직원들은 식당에 들어갈 때 전자카드를 사용하고, 비정규직 사원들은 식권을 사용했는데 이런 구분을 없앴다. 4대 보험에도 모두 가입시키고 있다.

비합리적인 하청제도의 개선도 시급한 과제다. 하청업체에 대한 원청업체의 각종 불공정 행위가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저임금과 부당 처우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은 경쟁입찰을 통해 하청공사를 발주하고 있다.

가장 낮은 공사원가를 제시한 업체가 하청기업으로 선정되기 때문에 응찰업체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생산원가를 낮추고 있다. 인건비와 산업재해 예방 비용이 우선 순위가 된다. 중소기협중앙회가 최근 하청업체 202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약 30%가 원청기업한테서 '공사단가의 인하요구'등 불공정 거래행위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중앙대 이병훈(사회학)교수는 "정부는 불공정거래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과 제도의 충실한 이행도 중요하다. 정부는 올해 '비정규직 차별금지법(가칭)' 등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 각종 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하지만 새 법을 만드는 것보다 기존 법을 제대로 준수하는 게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특별취재팀=임봉수.정철근(정책기획부).김승현(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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