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글로벌化와 사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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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라틴어로 사치(奢侈:luxuria)는 「지나침」 또는 「불요불급」을 뜻한다.로마시대 풍자작가 데시무스 주베날리스는 사치를「오랜 평화시대의 악(惡)이며 전쟁보다 무서운 재앙」으로 규정했다.시인 호라티우스는 사치를 로마제국이 멸망한 원인의 하나로꼽았다. 인간의 삶이 풍요해지면서 사치의 개념도 달라지고 있다.『여가계급의 이론』을 쓴 베블런은 「과시(誇示)적 소비」로 규정했다.「여유계층의 명망(名望)을 유지하는 수단」이다.「너도나도」식의 편승효과(bandwagon)로 대중을 물들게 하는 사치는 「속물근성」으로 표현된다.「개인적 만족이나 유쾌한 경험」의 한 수단,또는 「자기도취」가 사치의 현대적 의미라고 한다. 브랜드의 명가(名家)들은 역사가 몇백년이다.루이 뷔통은 중동의 토후(土侯)들에게 가죽가방을 주문생산방식으로 공급하기 위해 1850년대 파리에서 문을 열었다.루이 프랑수아 카르티에가 파리에 보석상을 차린 것은 1847년이었다.코냑의 헤네시는역사가 3백31년,현 경영진은 창업 이후 7번째 세대다.역사와전통,그리고 유럽산(産)이란 딱지가 금과옥조다.
70년대초까지 중동산유국들의 왕실이 가장 걸찬 시장이었다.석유경기가 시들하면서 이들의 봇물수요도 가라앉았다.브랜드명가들은매장수를 대폭 줄이고 고가화와 소량다종(少量多種)을 통한 「공급부족」창출로 맞섰다.
80년대까지 시계는 롤렉스 금딱지가 풍미했다.스테인리스 스틸의 스포츠시계 태그 호이어가 90년대 주자로 나섰다.호이어측은종래 1백달러짜리 시계 제조를 그만두고 10배~1백배 되는 고가품으로 생산을 격상시켰다.매상은 7년새 7배로 뛰었다.스테인리스 스틸속에 「감추어진 부(富)」가 새 구호다.「90년대는 친근의 10년」이란 표어아래 모든 신변용품들이 부드럽고 친근한고급재질로 재창조되고 있다.
글로벌화로 소비에 국경이 무너지면서 한국등 아시아 고성장국가들이 대고객으로 떠올랐다.「세계최고」만을 찾는 일부 중.상 소비계층의 극성은 「쾌락에로의 분풀이」양상마저 띤다.
국내산업은 중저가품 생산단계에 머물러 있고 그 발판인 내수시장은 갈수록 포화상태다.유독 소비만 세계첨단을 달린다.이 공동(空洞)이 두고두고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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