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부동산 회복 중 다시‘휘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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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침체에서 깨어나는 듯하던 일본의 부동산 경기가 다시 휘청거리고 있다. 도쿄증권거래소 1부에 상장된 대형 부동산회사 어번코프는 2558억 엔(약 2조6000억원)의 부채를 떠안고 13일 도쿄지방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어번코프의 부채는 올 들어 도산한 일본 기업 가운데 제일 많다.

사퇴를 발표한 보조노 히로유키(房園博行)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의 여파로 부동산 시장이 급속히 악화하면서 경영이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1990년대 초 버블(거품) 경제 붕괴로 부동산 가격이 폭락했을 때도 살아남은 이 회사가 도산하자 일본 부동산업계와 금융업계는 큰 충격을 받고 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14일 “부동산 시장의 침체는 이미 지난해 여름부터 예견됐다”고 지적했다. 2002년부터 6년간 경기 회복이 지속되면서 도쿄·오사카·나고야·요코하마 등 대도시의 중심가 부동산 값은 버블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다.

도쿄의 긴자·마루노우치·롯폰기 등 1급지는 2006~2007년 한 해에 20~30%씩 급등하기도 했다. 일본에선 이를 ‘부동산 미니 버블’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1월부터 부동산회사들의 도산이 이어져 어번코프를 비롯해 8월까지 500억 엔 이상의 부채를 안고 도산한 곳이 7개에 달한다. 4~7월 부동산회사 도산 건수는 전년 대비 40% 증가한 208개사에 달했다. 긴키대 경제학과 이지마 다카오 교수는 “경기 회복세를 타고 급증했던 신축 건물들이 수요를 초과하기 시작하면서 자금 회수가 어려워지자 줄도산으로 이어졌다”고 진단했다.

도심의 사무실 공실률도 치솟고 있다. 부동산 중개사인 미키상사에 따르면 미나토구 등 도쿄 도심 5개 구의 공실률은 지난해 11월(2.49%) 상승하기 시작해 올 7월에는 3.75%로 높아졌다.

최근 3~5년간 붐을 타던 고급 맨션의 ‘9월 폭락설’도 나돌고 있다. 지난달 28일자 주간지 아에라는 “수도권에선 분양 가격을 20% 넘게 깎아줘도 팔리지 않는 신축 주택이 즐비하다”며 “9월부터는 폭락세도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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