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이코노미>살아있는 '케인스의 경제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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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경제학자중의 경제학자」미국 MIT의 폴 새뮤얼슨은 「20세기의 경제학자」로 존 메이나드 케인스를 꼽는다.18세기는 애덤스미스,19세기는 레옹 왈라스라고 한다.존 케네스 갈브레이스 역시 케인스를 「20세기 가장 영향력있는 경제적 인물」로 규정한다.케인스는 관상(冠狀)혈전증으로 고생하다 1946년 4월21일 63세로 세상을 떠났다.그의 사후(死後)꼭 50년이다.
케인스는 「상아탑 학자」가 아닌 「현실적 인물」(practical man)이었다.끈질긴 구애끝에 미모의 발레리나를 아내로맞고 주식투자와 외환투기로 백만장자가 됐다.게다가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창설주역의 한 사람이었다.
하버드대가 막대한 학교재산을 굴려서 불리는데 두가지 철칙이 있다고 한다.경제학과와 상의하지 말라가 첫째다.경영대학원과 상의말라가 둘째다.이름난 경제학자가 투자로 백만장자가 된 것은 데이비드 리카도와 케인스 정도다.요제프 슘페터,그리 고 화폐수량설로 유명한 어빙 피셔는 빌린 남의 돈까지 몽땅 날렸다.
케인스의 경제학은 「케인스주의자들의 경제학」,즉 오늘의 「케인스 경제학」과 구별된다.마르크스가 마르크스주의자와 구별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케인스의 경제학은 철학,즉 「좋은 삶」을 향한 비전에서 출발했다.「자본주의적 개인주의」를 대 량 실업(失業)의 재앙에서 구해내는 것이 그의 경제학의 사명이었다.현실을직관으로 꿰뚫어보는 가장 직관적인 경제학자였고,그의 아내 리디아 말대로 그는 「경제학자 이상(以上)」이었다.
시장기능에만 맡겨둘 경우 경제는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이 케인스이론의 출발점이다.경제학은 정확한 과학이 아니며 자동조절 메커니즘도 작동하지 않는다.벌어들인 소득은 모두 소비되지않고,미래가 불안할 경우 소비는 더욱 움츠러든다 .불확실성과 시간,돈에 대한 심리와 투기적 본능들이 경제를 끊임없이 교란시키며 실업과 수요및 성장부진을 낳는다.따라서 적절한 정책적 개입을 통해 경제를 안정화시키고 실적을 끌어올리는 것이 그의 의도였다.「향상된 관리(管理)」를 통해 자본주의의 생존을 도모한것이다. 그의 사후 50년동안 그의 경제학은 현실의 정책적 필요에 따라 몇번씩 죽고,더러는 되살아났다.임기응변적 정책개입은단기적인 효과에 그칠뿐 장기적으로 경제를 더 해친다는 질타는 지금도 드세다.케인스는 「장기적으로 우리 모두는 죽는다 」는 명언을 남겼다.케인스의 정부개입은 정부의 전횡(專橫)을 뜻하지않는다.안정된 룰에 따라 신중하고 자제력있는 조정이 이루어질수록 케인스의 경제학은 진가를 발휘한다.케인스는 경제학계에 수학으로 무장된 기술자들을 양산시켰다.그러나 이들은 「케인스적 정책기술자」에 머무를뿐 그의 비전을 현실상황에 맞게 진전시키는데실패했다.「위대한 아이디어 맨」으로 케인스는 죽지않았다.
〈본사 칼럼니스트〉 변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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