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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개막식을 보고] 중화 마음껏 뽐낸 ‘한여름 밤의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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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베이징 올림픽 개회식은 화려하고 웅대한 ‘한여름 밤의 꿈’이었다. 왜 중국을 ‘중화’라고 불렀는지 그 이유를 눈치챘을 것이다. 중화의 중(中)은 가운데 중이요, 화(華)는 모란꽃처럼 크고 탐스러운 꽃을 의미하는 글자다. 문자 그대로 2008년 8월 8일 8시에서 몇 시간 동안 분명 세계의 중심은 중국에 있었고 베이징은 그 한가운데에서 피어난 인류 문화문명의 거대한 꽃이었다.

중화 문화권에서 호흡해 온 한국인으로서는 순간순간 더없이 친근감을 느끼는 황홀한 장면의 연속이었다.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상징이나 천인합일의 태극도형으로 펼쳐지는 퍼포먼스는 모두가 우리 것으로 착각할 만한 감동을 주었다.

문화혁명 시절 배척됐던 공자의 화려한 재생은 더욱 놀랍다.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않으랴(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는 논어 첫머리에 나오는 그 유명한 공자의 말씀이 40억 명의 지구인에게 보내는 환영사로 절묘하게 되살아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말 바로 뒤에 등장하는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라 하지 않겠는가(人不知不<614D>不亦君子乎)”라는 대목을 중국 사람도 그것을 구경하고 있는 사람도 다 같이 잊고 있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인해전술의 파도처럼 밀려오는 영상물이 거창하면 거창할수록, 중국의 위대성을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우리는 “불역군자호”라고 감탄할 만한 장면은 찾아보기 힘들다. 자국 문화를 과시하는 우월의식 뒤에는 어쩔 수 없이 열등의식이 숨어 있기 마련이다. 서구 근대문화를 들여오는 과정에서 자신의 전통문화를 말소하고 그 역사에서 벗어나려 했던 아시아인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근대화에 어느 정도 성공해 자신이 생기면 이번에는 자신의 문화를 과대 포장하는 과잉행동으로 전향한다. 서구 문명에 대한 이 미묘한 콤플렉스에서 우리는 누구나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4대 발명품을 비롯해 중국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재현하기 위해서 장이머우 감독이 사용한 LED의 첨단 과학기술은 두말할 것 없이 서양에 기원을 둔 발명물이다. 이미 올림픽 그 자체가 그리스 문화의 산물이 아닌가. 알파벳 순서를 아무리 한자, 그것도 간체자의 획수로 따져 입장국의 순서를 정한다 해도 그리스는 여전히 올림픽 발상국으로 맨 앞에서 입장할 수밖에 없다.

남의 잔치에 재를 뿌리려는 심술이 아니다. 중국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함정과 덫이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알게 모르게 새어 나온다는 이야기다. 베이징 올림픽 개회식을 보면서 박수를 보내다가도 문득 빈 골짜기를 지나다 홀로 향기롭게 핀 난초를 보면서 노래를 지어 불렀다는 ‘공곡유란(空谷幽蘭)’의 공자님 고사가 머리에 떠오른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군자는 개의치 않고 자족할 줄 안다. 이 군자의 초연한 모습을 강조했더라면 세계인은 더욱 감동 받았을 것이다.

이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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