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조 영웅’ 리닝 운동장 한 바퀴 날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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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던 베이징 올림픽 성화 점화자는 ‘중국 체조의 영웅’ 리닝(李寧·45)이었다.

개막식이 절정으로 치달은 9일 1시(한국시간), 경기장 한가운데서 성화를 넘겨받은 리닝은 와이어 줄을 타고 성화대까지 날아가 성화대에 불을 붙였다.

중국이 리닝을 점화자로 낙점한 이유는 중국체육총국에서 내세운 ‘은퇴한 선수 중 지명도가 높고, 올림픽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선수’라는 조건에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리닝은 1984년 LA 올림픽에서 금3, 은2, 동1개를 따내는 등 80년대 각종 국제 체조대회에서 106개의 금메달을 차지한 중국 체조계의 전설이다. 그는 또한 중국 대륙 남쪽의 주앙족(인구 1800만 명) 자치구 출신으로 중국 내 55개 소수민족을 대표하는 상징성도 갖고 있다.

중국이 리닝을 선택한 중요한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올림픽 개막식을 통해 ‘리닝’이라는 브랜드를 전 세계에 띄우려는 것이다.

88년 은퇴한 리닝은 90년 자신의 이름을 따 리닝(Li Ning)이라는 스포츠 용품 업체를 설립했다. 리닝은 중국 국민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으며 급속 성장했고, 중국 내 스포츠 용품 시장에서 나이키·아디다스에 이어 매출 3위를 달리고 있다.

중국 정부는 리닝을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기 위해 각종 특혜를 줬고 올림픽 공식 파트너가 아닌 리닝이 ‘매복 마케팅’을 할 수 있도록 밀어주고 있다는 의혹을 사 왔다. 관영 중국 중앙방송(CC-TV)의 올림픽 담당 아나운서와 해설자들은 리닝의 로고가 새겨진 옷을 입고 방송을 하고, 탁구·다이빙 등 중국의 초강세 종목 대표선수들도 리닝 유니폼을 입는다. 베이징올림픽위원회(BOCOG)에 8000만 달러를 내고 공식 스폰서 자격을 딴 아디다스가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중국 당국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을 통해 그들의 찬란한 문화와 웅비하는 기상을 보여 주려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스포츠 시장에서도 자국 브랜드가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 줬다. 리닝이 성화 점화자로 선택된 것도 이런 중국의 의도가 표현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베이징=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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