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북한 판문점도발 무엇을 겨냥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한반도에 긴장이 흐르고 있다.북한이 정전협정을 위반하고 비무장지대 유지 의무를 일방적으로 저버린 탓에 빚어진 일이다.
이번 사태는 북한이 한발만 삐끗 해도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일거에 고양시킬 수 있는 위험한 「시위 행동」을 태연히 발동할수 있는 국가라는 점을 우리에게 다시금 인식시켜 주었다.
돌이켜보면 지난 3년동안 북한은 매년 3~4월에 걸쳐 국제사회를 향해 「도발적 행동」을 되풀이해왔다.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 선언,94년 핵연료 재처리 움직임,95년 핵동결해제 시사가 그것이다.
북한은 올해 다시 똑같은 행동방식을 택했다.
지난달 29일 김광진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은 『한반도에서의 휴전상태는 한계에 달했다』고 경고했다.지난 4일에는 인민군 판문점대표부 대변인이 담화를 발표해 북한이 군사경계선과 비무장지대의 유지 및 관리의무를 방기(放棄)한다고 선언했 다.더불어 5일부터는 사흘 연속 무장병사들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침입해우려를 불러일으키기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북한의 의도를 알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지난 8일윌리엄 페리 미 국방장관은 『북한이 국내를 단속하기 위한 정치적 행동인 듯하다』는 추론을 제시했지만 확실한 근거가 있지는 않다. 물론 이번에 북한이 정전협정 무효화를 진전시키는 행동을택한 것은 내부 단속과 함께 미국과의 「군사적 대화」 실현을 노린 정치적 행동의 색채가 매우 짙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평양에 「군사적 의도」가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최소한 지금의 북한은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긴장을 필요로 하고있다고 보는 쪽이 무리가 없다.북한이 심각한 경제난과 식량부족에 직면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그럴수록 「전쟁 위기」는 국민에게 내핍을 강요할 좋은 구실이 되기 때 문이다.
봄철이 오면서 시작된 북한의 일련의 시위 행동은 혹독한 겨울을 간신히 넘기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식량공급 요구가 강해진 데대한 일종의 「대응책」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사정이 있다손 치더라도 북한이 미국과의 직접적인군사적 대화채널 구축을 염원하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판문점에서의 시위행동도 지난 2월23일 북한이 미국에대해 잠정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한 데서 시발점을 찾을 수 있다. 북한의 시각에서 보면 북.미간 직접 군사대화 실현을 저해하는 최대 요인은 한국의 반대다.
이번 시위행동의 목적중 하나도 한국의 태도변경을 재촉하는 데있다고 생각된다.지금 평양은 「한반도 긴장 고조→군사 충돌」시나리오를 겁내 미국이 한국 설득에 힘쓸 것이라는 기대를 걸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북한은 앞으로도 군사적 긴장을 단계적으로 높여갈 것으로 예상된다.예를 들면 무력시위 행동이 판문점에 국한되지 않고 비무장지대 전역 또는 일부 지역으로 확대되는 일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군사경계선을 따라 공격용 무기를 증강 배치하는것도 있을 수 있다.
이런 상황은 확실히 위기 가능성을 고조시킨다.
위기를 회피하려면 무엇이 가능한지 신중히 검토하지 않으면 안된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어떤 형태로든 남북대화가 실현되는 것이다.「화해를 위한」 대화가 아니라 「상호 비난과 대립 속에서 위기를 회피하기 위한」 대화야말로 지금 가장 요구되는 것이아닐까. ◇이즈미 교수 주요약력 ▶50년생▶77년 일본 조지(上智)대 박사과정수료▶80~82년 연세대 유학▶일본 평화안전보장연구소 주임연구원▶87년부터 시즈오카현립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미국 하버드대.영국 뉴캐슬대.미 평화연구소 객원연구원 역임▶저서:『동북아의 핵 정책』『북한핵문제 대응방안』등 이즈미 하지메 일본시즈오카 현립大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