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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포럼

NL, PD 그리고 국회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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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7대 총선 과정은 정치권과 국민의 이념적 분화를 가시화한 보수와 진보 간의 대결이었다. 서울 광화문 풍경이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의회의 대통령 탄핵안 가결에 대한 진보세력의 반발은 광화문 촛불시위로 나타났고, 보수세력도 밀릴 세라 거리로 나섰다. 그곳에서는 '수구 꼴통''친북 좌파'라는 말들이 거침없이 터져나왔다. 정책으로 뒷받침되지 않은 이념적 공격은 치열했고, 그런 주장들은 지역주의와 뒤섞여 유권자들의 표심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국민이 선택한 결과는 개혁과 진보의 승리였다.

전체적으로 판갈이 현상이 벌어지면서 의회 세력에 변화가 왔다. 독자적 노동자당이 의회에 진출했으며, 진보 성향이 뚜렷한 인물들이 여당에 대거 진출했다. 독재 대 반독재,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가 허물어지고 정치적 민주화가 진전된 상태에서 치러진 이번 선거는 본격적인 이념정당 구축을 위한 기초작업인 것처럼 보인다. 민주당에서 분리된 진보세력의 승리와 민주당의 몰락, 한나라당의 기사회생이 그런 구도를 만들었다.

국민은 여야간 좌우 이념 차이가 어떻게 정치에 담길지 궁금해하고 있다. 한나라당으로서는 어떻게 정제된 보수를 만드느냐가, 열린우리당으로선 어떻게 자기 색깔을 내느냐가 1차적 과제가 될 것이다. 특별히 관심을 끄는 것은 49석에서 152석으로 몸집을 불린 집권여당의 이념적 성향과 정책이다.

그 변수의 하나가 열린우리당의 신진 세력이다. 비례 대표 전문가 그룹 외에 지역구를 통해 수혈된 의원들 중에는 전대협 의장 출신 등 1980년대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386 운동권' 출신이 다수 포함돼 있다. 이들이 활동했던 80년대는 광주민중항쟁의 좌절로 자유주의적 반독재 민주화운동과는 질적으로 다른 NL(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PD(민중민주주의).CA(제헌의회파) 등 민중 주도의 혁명적 운동론이 일어난 때다. 또 광주와 관련한 미국의 자세가 드러나면서 반미감정이 촉발된 때이기도 하다(조희연 교수, '광주민중항쟁과 80년대 민주화운동'). 그런 독특한 경험과 이념적 성향을 가졌던 인물들이 정치권력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됐다는 것은 정치사회적으로 의미가 작지 않다. 그들이 어떤 목소리를 내고 세력화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정치는 다른 양상을 띨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 과정에서 나타난 핵심 진보세력의 언행은 아직도 그들이 과거 운동권 시절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들은 이번 선거에서도 상대방을 '반민주세력'으로 규정하고 '시민혁명'을 주장했다. '의회 독재'라고 하고 '의회 쿠데타'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 반민주와 독재가 있는가. 특정 가치를 지향하는 세력의 내부적 도구로서 '반민주'가 있는지는 모르나 사회를 구속하는 '반민주'는 없다. 있다면 서로 다른 가치가 있을 뿐이다. 법과 민의가 지배하는 다원화 사회, 그것이 우리보다 앞서 간 선진국의 교훈이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이번 선거 결과가 그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이제 '적'들에 대한 분노와 극단적 투쟁을 풀라는 것이다. 그리고 초심으로 돌아가 민주사회의 기본 가치가 더욱 굳건히 작동하도록 하고, 그 토대 위에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건강하게 자리잡는 것이다.

훗날 누군가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정리할 때 2004년을 운동권의 본격적인 '정치권력 획득시기'라고 분류하고 그 의미와 성과를 기술할 것이다. 80년 광주민중항쟁을 계기로 혁명적 운동론으로 무장했던 그들이 민주화된 사회에서 어떻게 운동의 목표와 방식을 수정했다고 적을지 궁금하다.

이덕녕 사회담당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