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 학생들에 ‘생생 영어’ 선뵐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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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봉사 장학생들이 4일 용인 현대인재개발원에서 진행된 국방부 군악대의 공연을 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사진=최민규 인턴기자]

4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현대인재개발원 대강당.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국제교육진흥원 김창은 팀장이 영어로 강의를 시작했다. “여러분이 갖춰야 할 것은 다섯 가지 ‘P’입니다. 전문적이고(Professional), 공손하며(Polite), 참을성 있고(Patient), 긍정적이며(Positive), 자부심이 있어야(Proud) 합니다. 바로 TaLK(Teach and Learn in Korea) 프로그램 장학생의 요건이죠.”

강단 아래서는 미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영국에서 온 380여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모두 한국 농어촌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노란 머리, 푸른 눈보다는 한국의 보통 젊은이 같은 사람이 훨씬 많았다. 외국인 63명(16%)을 제외한 323명(84%)이 재외동포 1.5세나 2세들이다.

이 중에는 제이슨 앨버티(25·미 네브래스카대 역사학)도 있었다. 그는 어머니가 한국인이다. 제이슨은 “모든 아이에게 고르게 공부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반 한국인(half Korean)인 나도 시골 학생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은 9월부터 6개월 내지 1년 동안 전국 농어촌 초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그에 앞서 학생 지도법이나 한국 문화를 배우는 연수가 이날 시작됐다. 정운찬 서울대 교수가 ‘지속적인 경제 성장과 교육의 역할’에 대해 특강을 했고, 국방부 계룡대가 국악 공연을 펼쳤다. 이들은 앞으로도 문화적 차이와 한국의 초등교육에 대해 배울 예정이다.

◇“부모님 찾고 싶어요”=이들이 한국에 온 사연은 천차만별이다. 재클린 모리스(22)는 생후 3개월 때 호주로 입양됐다. 시드니의 뉴사우스 웨일스대에서 영화를 공부하면서 자신 같은 입양아를 주제로 한 영화(‘A girl in the mirror’)도 만들었다. 재클린은 영화에 대해 “거울에 비친 모습과 내면이 다른, 그런 입양아의 파편을 그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9월부터 울산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칠 예정이다. “아이들을 가르쳐 본 경험이 없어 긴장되고 걱정돼요. 하지만 열심히 하고 어머니도 다시 찾아보고 싶어요.”  

미국에서 온 매슈 맥그래스(22)도 입양아 출신이다. 생후 8개월에 미국으로 입양된 후 초·중·고교를 홈스쿨링으로 16세에 마치고 메릴랜드대에 입학했다. 그는 한국에 대한 관심으로 대학 전공을 동아시아학과 한국학을 선택했다고 한다. 매슈는 “한국어와 한국 역사, 문화에 대한 학문적인 기초를 쌓고 싶다”며 “동아시아 역사 전문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재외동포·새로운 삶 꿈꾸는 외국인=미국 시민권자 장정진(29)씨는 고교 졸업 후 이민을 갔다가 한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고 한다. 그는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하지만 정작 한국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것 같아 오게 됐다”고 했다.

새로운 삶을 꿈꾸며 온 외국인도 많다. 제임스 월시(50·미 포틀랜드 주립대 영문학)는 “건설 노동자로 일하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 대학에 진학했다”며 “울산대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공부도 하고 영어를 가르치면서 아시아를 알고 싶다”고 말했다. 중국계 미국인 알리시아 첸(19)은 “한국 가수들의 가창력에 감동 받아 한국 음악을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 크리스티안 루트리지(26·영 셰필드대 한국학)는 “김치와 라면 같은 한국 요리가 좋아서” 한국에 왔다고 한다.

김창은 팀장은 “선발 시 열의를 가장 중시했다”며 “영어를 접할 기회가 적었던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백일현 기자
사진=최민규 인턴기자

◇TaLK(Teach and Learn in Korea)=교포·외국인 대학생들이 원어민 교사가 적은 농어촌 지역 학교에서 방과 후 강사로 활동하는 프로그램이다. 지역 간 영어 격차를 해소하자는 취지로 교육과학기술부가 올해 처음 운영을 시작했다. 학생들에게는 왕복 항공료와 숙박비, 월 150만원 안팎의 활동비가 지급된다. 6개월~1년간 하루 3시간씩 주 5회 가르치는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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