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制憲의원 선거 깨끗한 경쟁 펼쳐-신국주교수 자료공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건국을 앞두고 사상 처음 치러졌던 1948년 5월10일의 제헌(制憲)국회의원선거는 혼란기 였지만 지금보다 훨씬 점잖고 신사적이었다.
신국주(申國柱)동국대 명예교수가 최근 공개한 제헌국회의원선거투표용지 견본과 개인홍보물들을 보면 우선 투표방식이나 후보들의홍보양태가 지금과는 크게 달랐다.
당시의 투표용지는 오늘날과 같은 아라비아 숫자 대신 막대기 개수로 기호를 표시했다.
후보의 기호를 더 확실히 알리기 위해 개인홍보물에 막대기 개수만큼의 손가락 숫자까지 이중으로 그려넣었다.
유권자들이 난생 처음 선거를 치러보는데다 문맹률이 매우 높았기 때문.
또 개인홍보물에는 입후보자의 선거공약과 함께 「출마지역 유권자 유지(有志)일동」 명의로 된 추천서가 실려있다.申교수는 『당시 국회의원 입후보자들은 대다수가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지도자였다.지역유지들은 그런 인물들을 골라 십만선량( 十萬選良)의대표로 추천했다』고 말했다.
이같은 인물들간의 경쟁 때문이어서인지 지지호소문에는 상대후보에 대한 비방 문구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화여전(梨花女專)교장출신으로 당시 서대문구에 출마했던 김활란(金活蘭)박사는 『서대문구 입후보자는 모두 훌륭하시다.자격자이시다.할 수만 있다면 전부 국회에 보내고 싶다.그러나 국법이다.어쩔 수 없다.오직 한분을 택해야 한다』며 상 대후보를 오히려 높이고 있다.
이동현 현대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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