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외교적 항의 수단은 성명 발표다. 외교관이 직접 주재국 정부를 항의 방문하는 경우도 있다. 더 강력한 수단은 상대국 대사를 외교통상부로 불러들이는 초치(招致)다. 대사 초치 역시 주한 일본대사가 단골손님이다. 그만큼 과거사나 독도 문제로 외교 갈등을 빚은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올 4월 서울에서의 올림픽 성화 봉송 도중 빚어진 중국인 폭력 사태 때는 중국이 ‘선수’를 쳐 우리 정부의 김을 뺐다. 외교부는 사건 발생 다음 날 닝푸쿠이(寧賦魁) 주중 대사를 초치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닝 대사가 먼저 외교부를 찾아와 “어제 성화 봉송에 잘 협조해 줘 고맙다”며 사의 표시를 해 오는 바람에 정부의 항의가 무색해졌다. 그 뒤 이용준 외교부 차관보가 아예 중국을 찾아가 중국 외교부의 공식 유감 표명을 받아 내긴 했지만 한동안 중국 측이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느냐”고 버텨 진땀을 뺐었다.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호의를 거절해 망신을 주는 항의 전술도 있다. 지난달 2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3’ 외교장관 회의장에서 유명환 장관은 바로 옆자리에 앉은 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 일본 외상과 대화는커녕 악수조차 나누지 않았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 외상이 말을 걸어오긴 했는데 대꾸하지 않았다”며 “사전에 작심한 것”이라고 말했다. 기념사진 촬영 때는 ‘다행히도’ 의장이 유 장관과 고무라 외상 사이에 서 어색하게 손을 잡아야 하는 장면을 피해 갈 수 있었다.
평소 친분이 깊은 외교관들끼리 항의의 뜻을 전달하는 건 곤혹스러운 일이다. 한 전직 고위 외교관은 “서로 쳐다보기 민망해 항의문을 교과서 읽듯 한 뒤 한동안 딴 곳을 보며 침묵하다가 헤어진 경우가 있었다”며 “접견실 바깥에 기자들이 있어 금세 일어날 수도 없었다”고 회고했다. 이럴 때 엄숙하고 진지한 표정을 짓는 것은 외교관의 기본이다. 적어도 카메라가 있는 곳에선 그렇다. 그래서 “직급이 높아질수록 연기력도 갖춰야 한다”는 말에 외교관들은 동의한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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