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1년 터널의 끝은 아직 멀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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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호 28면

세계 경제가 미국 서브프라임발(發) 신용위기에 빠진 지 꼭 1년을 맞았다. 지난해 7월 말 미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의 헤지펀드가 서브프라임 부실을 견디지 못해 청산 위기에 몰리고, 프랑스 최대 은행인 BNP파리바의 3개 펀드가 환매를 중단했다는 비보가 날아들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은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단기 금리가 치솟고 주가는 폭락했다.

지나고 보니 거대한 ‘고통의 터널’ 속으로 빨려 드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터널의 초입이다 보니 아직은 어두움을 느낄 수 없었다. 미국과 유럽의 중앙은행이 공조한 긴급 유동성 수혈로 급한 불을 끄자 시장은 이내 회복했다. 국내 증시의 코스피지수도 곧바로 2000선 고지를 탈환했다. 중국과 인도 증시는 오히려 투자의 열기를 더욱 강하게 분출했다. 그게 신이 내려준 절호의 탈출 기회였건만, 사람들은 거꾸로 움직였다.

‘투자의 잔치’는 이후 두 달간 절정을 이뤘다. 투자자들은 서브프라임 위험을 애써 외면하면서 눈앞의 시세를 좇아 불꽃 베팅에 나섰다. 남들이 한몫 잡았다는 얘기를 듣고, 금융회사 펀드 판매 창구에 20∼30분씩 줄 서 기다린 뒤 무작정 “미래에셋 주세요”라는 사람들까지 등장했다. 시장의 리더들은 “중국 등 신흥시장의 미래에 주목하자”며 해외펀드 판매에 열을 올렸다. 설사 미국시장이 서브프라임 문제로 침몰하더라도 신흥시장은 건재할 것이란 ‘디커플링’ 이론이 그럴듯한 분석을 곁들여 활발히 유포됐다. 모두 부자가 될 꿈에 잔뜩 부풀었다. 펀드 하나쯤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팔불출 소리를 들었다. 1년 전 한국의 여름은 그렇게 뜨거웠다.

솔직히 기자도 한동안 분위기에 취해 낙관론을 설파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비교적 남들보다 빨리 미몽에서 깨어나 그 위험성을 경고했음을 자부한다. 무엇보다 갈수록 심해지는 ‘쏠림 현상’을 보면서 버블의 절정이 멀지 않았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아무리 운용을 잘한다고 해도 신규 펀드 투자 자금의 70∼80%가 미래에셋으로 쏠리는 것은 분명 비정상적인 시장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 후유증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래에셋이 내놓은 ‘인사이트펀드’에 불과 며칠 새 3조원 이상의 돈이 몰리는 것을 보면서 생각이 굳어졌다.

중앙SUNDAY는 중국 증시의 버블 위험을 알리는 분석 기사를 잇따라 내보냈다. 아울러 ‘미래에셋 신드롬’을 경고하면서 ‘인사이트펀드 알고 사자’는 제언성 기사도 냈다. 인플레 시대에 대비해 주식 비중을 줄이는 방향의 리스크 관리도 집중 조명했다.

이제 금융위기 1년을 맞아 거꾸로 이런 고민을 해 본다. 시장의 침체에 떠밀려 너무 비관론으로 흐르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무언가 희망의 끈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자문도 한다.

하지만 터널의 끝은 아직 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최근 미국을 직접 돌아볼 기회를 가지면서 더욱 그렇다. 미국의 집값이 많이 떨어졌다고 하지만 서민층 주거지역 중심이었고, 중산층 이상 부자 동네 집값은 이제 막 떨어지기 시작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업들의 실적 악화와 구조조정도 이제 시작이었다. 금융권 부실은 끊임없이 부풀고 있었다. 미 정부의 구제책에도 불구하고 상징적으로 몇 개의 투자은행과 대기업이 쓰러지는 상황이 와야 터널은 끝단일 것이라고 진단하는 전문가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번 위기로 미국 경제 자체가 주저앉을 것으로 걱정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조급증만 버린다면 얼마든지 남의 고통을 나의 축제로 돌릴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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