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로, 펜으로 ‘수렴청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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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쿠바의 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82)가 돌아왔다. 2006년 6월 건강 문제로 동생 라울에게 통치권을 넘겨주고 물러난 뒤 2년여 만이다. 피델은 최근 신문 칼럼니스트로 목소리를 내는 등 대외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31일 보도했다.

카스트로는 2년 전 장 수술을 받은 뒤 공개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간혹 TV를 통해 비친 그는 쇠약해 보였다. 50여 년에 걸친 그의 시대는 끝난 듯했다. 하지만 그가 건강을 회복한 모습으로 TV에 나오고, 칼럼니스트로 활동하자 쿠바가 그의 펜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그가 라울이 추진하는 경제 개혁에 대해 “1959년의 혁명 정신을 잊지 말자”며 우회적으로 비난한 뒤 경제와 농업 부문의 개혁이 주춤하고 있다. 이 때문에 피델의 입김이 라울의 개혁을 가로막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26일 열린 쿠바혁명 55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라울이 경제 개혁 방안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것이 대표적인 예라는 것이다. 라울은 올 2월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맡은 뒤 컴퓨터와 휴대전화 판매, 개인택시 영업을 허가하고 외국인 전용 호텔을 내국인에게 개방하는 등의 경제 개혁 조치를 단행했다.

피델은 국가 정책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뿐 아니라 칼럼니스트로도 정력적으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최근에는 쿠바 정부 신문인 그란마에 올림픽 대표 선수를 격려하는 메시지를 게재했다.

그는 대표단이 출국하자 “고향의 응원이 함께할 것”이라며 “가서 승전 군인처럼 이기라”고 독려했다. 그는 또 ‘두 개의 한국’이라는 기고문에서는 “쿠바와 한국 간의 관계가 건설적으로 접근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오늘날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등에서 브라질 규모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며 “쿠바가 한국과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데 특별히 주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해외 주요 인사들을 직접 만나는 등 국제 무대에서도 영향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피델은 지난달 10일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초청한 뒤 5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마르케스는 “매우 심오하고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으며 그가 아직 뚜렷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민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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