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北.美정상급회담 수용요구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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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국이 우리 정부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북한과의 장성급판문점 접촉 성사를 위해 다각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귀추가주목된다.
북한이 지난해 3월 미국과의 장성급회담을 제의한 이후 미국은우리 정부를 의식,직접적으로 호응하지 않았으나 탄력적으로 대응해왔다. 북측 제의가 나온지 두달만인 5월12일 게리 럭 주한유엔군사령관이 이양호(李養鎬)국방부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북한측의 비무장지대내 불법행동을 협의하기 위해 북.미 장성급 접촉이필요하다는 점을 언급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반대로 주춤하던 미국은 지난해 9월 다시럭 사령관의 서한을 통해 북.미 장성급 접촉에 관한 구체적인 안을 우리측에 제시한데 이어 지난 1월에는 국방부 아태담당 부차관보 명의의 서한을 통해 이를 다시 촉구해온 것이다.이처럼 북한과의 장성급 접촉에 나서려는 미국의 논리는 북한의 무모한 행동으로 휴전선 등지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경우 이를 해결할 장이 없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이같은 미국의 주장에 대해 우리 정부는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미국측이 제의한 내용에 따르면▶미군 소장급을 임시 수석대표로해 한국을 비롯한 4개국 대표들이 참석하고▶미군장성은 앞줄에,나머지 대표들은 뒷줄에 앉고▶회담장소는 판문점 일직장교 교대실(T-3)로 하고▶의제는 한반도 분쟁및 군사대결 예방으로 한다는 것이다.
우리측은 미국의 얘기대로라면 한국은 「들러리」로 전락할수밖에없다는 것이다.수석대표를 미군측에 임시로 양보할 수는 있으나 참석자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군장성의 보좌관식이 되는 회담은 결코 받아들일수 없다는 설명이다.미국과 북한이 제시한 회담장소인 T-3는 양측 대표들이중앙을 경계로 의자를 각각 한개만 놓을 수 있는 좁은 곳이라는점이 의도하는게 뻔하지 않으냐고 흥분하고 있다 .
미국이 앞으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전적으로 무시하면서 장성급접촉을 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지만 미국의 기본입장이나 자세를 보면 사태는 간단치가 않다.
94년 미군헬기 추락사건에서 보여주었듯 북한의 휴전선 교란행위등 「불가피한 상황」이 벌어질 경우 미국은 결국 현재와는 다소 다르겠지만 북.미 장성급 회담을 성사시킬 여지가 크다는 전망이다.11월 대선을 앞둔 클린턴 행정부가 외교적 치적을 거둘수 있는 대상이 북한이라는 것도 우려를 낳게 하는 부분이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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