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 도살자’ 카라지치 오늘 첫 재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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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보스니아 내전 전범 라도반 카라지치(63)가 드디어 법정에 서게 됐다. 로이터·AFP 통신 등은 카라지치가 체포 9일 만인 30일(현지시간) 오전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에 전격 인도됐으며, 31일 첫 심리가 열릴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카라지치는 31일 오후 4시에 열릴 첫 공판에서 자신의 혐의에 대해 답변을 요구받을 예정이다. 그는 1995년 스레브레니차에서 보스니아 이슬람계 주민 8000명을 학살하는 등 92~95년 15개 항목의 반인도주의적 전쟁 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만약 카라지치가 답변을 거부하면 다음 절차는 자동으로 연기되며, 다음 심리까지 최대 30일간의 유예기간을 갖게 된다.

카라지치의 변호사인 스베타 부야치치는 그가 30일 동안 심리 개시를 연기할 것이며,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밝힌 대로 직접 변론에 나설 것이라고 전했다. 또 베오그라드에서 헤이그 이송에 반대하는 항소장은 제출하지 않았으며, 항소장 제출 의사를 밝힌 것은 시간을 끌기 위한 것이었다고 시인했다. 베오그라드에서 카라지치를 면회한 친척들은 그의 건강 상태가 매우 양호했으며 직접 변론에 나서기 위해 두 벌의 양복을 마련했다고 전했다. 일부 소식통들은 재판 개시까지 수개월이 걸릴 수 있으며 종결까지는 몇 년이 소요될지 알 수 없다고 전망했다.

전날 밤까지 지지자들이 이송에 반대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인 탓에 카라지치의 이송 과정은 ‘007 작전’을 방불케 했다. 오전 3시45분쯤 비밀 경찰의 호송하에 베오그라드의 수감시설을 떠나 공항으로 이동했고, 여기서 세르비아 정부가 제공한 비행기편으로 네덜란드 로테르담 공항으로 옮겨졌다. 공항에서 헤이그 근교의 셰베닝겐 감옥까지는 헬기로 이동했다.

수감 시설에 도착한 카라지치는 의료 검진을 받은 뒤 재판 과정에서 사용할 방을 배정받을 예정이다. 2006년 옥중 사망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 대통령과 같은 방을 사용하게 될 것이란 얘기도 나오고 있다. 네르마 옐라치치 재판소 대변인은 “국제 규범에 따라 그의 건강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라지치는 21일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붙잡혔다. 체포 당시 그는 트레이드 마크인 흰색 갈기 머리 대신 검게 염색한 머리에 수염을 길게 기르고 있었으며 여행용 가방을 메고 어디론가 떠나는 행색이었다.

도피 기간 중에는 ‘드라간 다비치’란 이름으로 공공연히 대체의학 전문가로 행세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헬시 라이프’라는 잡지에 심리학과 생물 에너지와 관련된 고정 칼럼을 썼으며 심지어 TV 방송에도 출연한 것으로 알려져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숨어 살던 아파트 인근 와인 바에도 단골로 드나들었다고 한다.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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