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바른 평가,밝은 21세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기술개발의 성공은 대부분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이룩된다.
그 성패의 최종 종착점은 소비자의 평가와 선택에 따라 결정된다. 성공적 벤처기업으로 현재 세계 6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는 어느 전자저울회사의 성공담은 「최종」소비자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극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10여년전 이 회사가 천신만고끝에 전자저울을 최초로 국산화했을 때 「1차」소비자인 상점주인들은 이 저울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처음에는 초기 국산제품이 으레 그렇듯 기술적으로 완벽하지못해 품질을 믿어주지 않아 안 팔리는 것으로 생 각했었다고 한다.어렵게 이 회사가 전자저울 1대를 정육점에 판매한 후 기적이 일어났다.이웃에 나란히 있었던 3개 정육점중 손님들은 대부분 전자저울이 있는 이 가게에 몰려들었던 것이다.그 당시 정육점과 같은 상점들은 대개 재래식 저울 을 써 손님들을 속임으로써 이익을 봐왔기 때문에 전자저울과 같은 정확한 계량기기를 기피했던 것이나 최종소비자인 손님들이 전자저울을 신뢰해 선택함으로써 양심불량의 다른 정육점도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세계적 수준에서 볼 때 흔히 우리나라 기업은 2류며,사회는 3류,정치는 4류라고 평가되고 있다.흥미있는 것은 소비자나 고객의 평가를 직접적으로 받고,소비자 선택의 반응시간이 빠른 분야에서는 기술혁신과 같이 변화와 개혁이 신속하게 진행된다.우리나라에서 현재 가장 개혁이 안되고 있는 분야로 손꼽히는 대학등의 교육계.사법분야.정치부문은 소비자 반응이 보수적으로 느리거나 소비자의 평가와 선택이 구조적으로 제약을 받고 있는 곳이다. 이중에서 언론개혁,특히 신문분야의 변화가 제일 먼저 일어날것이다.왜냐하면 비록 신문독자가 일반기업의 고객에 비해 보수적이더라도 20,30대 독자층의 변화와 개혁에 대한 욕구가 워낙강하기 때문에 이들 새로운 소비자 계층의 평가와 선택에 둔감한신문은 뒤처질 것이다.
그러나 교육개혁이나 정치개혁은 더디게 일어날 것이다.그 이유는 소비자가 선택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회문화적 문제가 있을뿐 아니라 소비자가 올바른 평가를 할 수 있는 정보제공에 구조적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먼저 대학개혁이 왜 잘 안되고 있는지 수요자의 선택관점에서 보면 자명(自明)하다.각 대학이 얼마만큼 교육을 잘 시키고,연구를 잘하는지의 내용을 보기보다는 사회가 어느 대학을 알아주는가에 집착하는 간판 위주의 문화적 풍토,각 고교와 입시학원의 이른바 일류대학 중심의 선택지도,외국언론에서 보기 힘든 일류대위주의 언론보도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학생들의 적성과는 거리가먼 비합리적 선택이 일어나게 된다.
이를 지양하기 위해 제대로 된 평가정보가 필요하다.그러나 최근 대학총장등의 모임인 대학교육협의회의 대학 교육평가결과 발표는 정육점 주인들이 「재래식 저울」로 소비자를 속이려고 하는 것과 같은 내용이어서 교육개혁에 노력하고 있는 대 학과 교수들을 크게 실망시키고 있다.이러한 담합(談合)을 꾀하는 대학들은이미 일부 언론에서 「전자저울」과 같은 대학평가를 매년 시행하여 큰 호응을 얻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교육부도 미국 주정부처럼 권위 있는 민간전문기관의 대학평가를장려해 기득권 수호에 급급한 대학교육협의회와 같은 기관의 평가를 배제하든가,아니면 영국과 같이 이해 당사자가 폭넓게 전문성을 갖고 참여하는 정부차원의 공공평가제도를 도입 하도록 검토하고 그 내용을 국가재정지원과 연계시키도록 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소비자의 평가선택이 올바르게 이뤄지도록 해야 우리나라 기업이 일류제품을 만들고,대학이 일류인재를 양성하고,정치권에서 일류정치인이 나오게 될 것이다.비양심적 정육점 주인과 같은 대학총장이나,붕당(朋黨)의 우두머리가 「재래 식 저울」로소비자의 선택을 어지럽히더라도 이제는 학생.학부모.유권자들이 「전자저울」과 같은 합리적 평가정보를 능동적으로 찾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대학의 후진성을 탓하고 정치인의 저질성(低質性)을 나무라는 것은 스스로의 얼굴에 침뱉기임을 우리 모두가 반성해야 한다.21세기를 위한 일류대학이나 정치는 우리의 선택에서 시작된다.
이진주 생산기술연구원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