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개성공단이 평화통일 토대 되기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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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해 보세요. 서울에서 직선으로 불과 60km 떨어진 개성공단에서 우리 기업들이 올 하반기 중에 생산라인을 가동합니다. 근로자는 군사분계선을 넘어 출퇴근하고요. 가슴 벅찬 일 아닙니까."

북한 개성공단 개발을 책임진 한국토지공사 김진호(金辰浩.63)사장. 그는 요즘 1백만평 규모의 공단 부지조성 공사와 1만평 규모의 시범공단에 입주할 기업체 선정 준비에 눈코뜰 새 없다. 지난 13일에는 토공의 리무진버스를 타고 네번째 개성을 다녀왔다. 개성 자남산 여관에서 북한 개성공업지구 사업자인 박창련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장과 만나 330만달러 규모의 공단부지 임차료 협정을 체결하기 위해서다.

金사장은 시범공단에 입주할 10개안팎의 업체로 신발.섬유.가구업종을 꼽았다. 그는 "초기에는 전력과 용수 공급에 어려움이 예상돼 되도록 이를 적게 쓰고 북한 노동력을 활용할 업체가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첫 진출 기업이란 상징성 때문에 재무구조가 튼튼하고 성공 가능성이 큰 업체를 위주로 5월중 선발을 마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1999년 합참의장을 끝으로 예편한 예비역 육군 대장(ROTC 2기)인 金사장은 북한 군부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는 "군사전략적 요충지로, 판문점과 인접한 개성을 남측에 개방했다는 것은 남북경협과 화해.협력 정책에 대한 북한 군부의 긍정적 판단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공단 터 닦기를 위해 이곳의 군 막사나 지하벙커 등을 모두 철거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현역시절 쌓은 북한 군부에 대한 감(感)은 북측과의 협상에서 막후 결정권을 쥔 군부를 이해하는 데 적지않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金사장은 "개성공단에서 생산하는 물건은 모두 '북한산(Made in DPRK)'이라는 원산지 표시를 하는 데 현재로선 미국시장은 물론 유럽연합(EU).일본 시장 진출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핵문제 해결 등 북.미관계 개선을 통해 대북 경제제재 조치를 풀지 않고서는 물건을 제대로 팔 수 없다는 얘기다.

金사장은 개성공단의 경쟁력 확보 문제도 직접 챙기고 있다. 평당 토지임차료를 3.3달러로 묶어 토지 분양가를 중국.베트남 등과 견줄 수 있는 평당 15만원 이하로 낮췄지만 혹 다른 인상 요인이 끼어들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그는 "평생 군인 생활을 한 나에게 평화통일의 토대를 닦는 데 앞장 설 기회가 주어진 건 행운"이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이영종 기자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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